Create Your First Project
Start adding your projects to your portfolio. Click on "Manage Projects" to get started
1주차 이무로
Keyword1.
메모
Editor.
이무로
메모하고 싶은 한 뼘의 세계, 시
일요일 아침 11시. 아침밥을 먹고 커피 한 잔을 정성껏 내려 흰 책상 앞으로 향합니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지 잠시 고민합니다. 병렬 독서를 위해 고심해서 고른 책 몇 권과 펜, 노트, 인덱스를 꺼냅니다. 독서하며 유독 마음에 드는 문장을 노트에 메모합니다. 일요일 아침 시간을 위해 평일을 버텨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으로 저에게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평온한 주말 아침, 메모하고 싶게 만드는 한 뼘의 세계인 시집 속 세계로 초대합니다.
1. 뜻밖의 바닐라, 이혜미, 문학과 지성사
- 바닐라의 맛
“얼음을 핥으며 오래 말을 아꼈지
케이크를 자르고 낮술을 마시던 창가에서
그 희고 연약한 윤곽을 망쳐놓으며
너는 없는 아름다움을 말했다
무심히 손을 휘저으며
미음과 리을 받침에 대해 이야기했지”
이혜미 시인의 시집에는 달콤한 것들이 자주 등장합니다(바닐라, 케이크, 딸기잼 등) 시인의 예리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달콤한 것을 묘사하는 점이 디저트를 사랑하는 사람인 저의 마음을 봄날의 날씨처럼 들뜨게 했습니다. ‘케이크의 희고 연약한 윤곽을 망쳐놓으며 없는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 읽는 순간에 상상했습니다. 좋아하는 디저트 가게에 앉아 하얀 딸기 생크림 케이크와
포크를 들고 있는 저를 말이죠.
2. 당근밭 걷기, 안희연, 문학동네
- 자귀
“오늘부로 너의 모든 계절을 만났어
오늘부로 너의 모든 계절을 만났어
신비로운 꽃을 피우고
고개를 떨군 채 차곡차곡 말라가고
앙상한 가지 위에 흰 눈을 받아 안는 너의 모든 계절을
(중략)
살아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나눠 가진 것
동심원을 그리며 가라앉은 것
죽지 마 살아 있어줘
조약돌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안희연 시인의 <당근밭 겉기>를 읽고 나면 삶에 대한 위로와 응원의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유독 삶이 고단하고 힘들 때 누군가가 ‘죽지 마 살아 있어줘’라는 말을 들었다면 어떨까요. 그저 죽지 말고 살아있어 달라는 말이 조약돌처럼 하찮고 작아 보일 수 있지만, 따뜻한 손안에 조약돌을 쥐고 만지며 살아가려는 의지를 다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시를 필사해 보는 것만으로도 효력이 있을 거예요.
3. 마중도 배웅도 없이, 박준, 창비
- 소인
“서른해쯤 전 봄날의 당신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다면
긴 글은 필요 없겠지 대신 목련처럼 희고 두꺼운 종이를
반으로 접어 지나간 햇수만큼 만원짜리 지폐를 넣어두면 되겠지
겉면에는 당신 하라고 그냥 당신 하라고만 적고 말겠지”
이 시를 읽고 문득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희고 두꺼운 종이를 봄날에 인사를 건네는 목련으로 비유하는 것. 이처럼 시에는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운명 같은 문장을 만났을 때 고개가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3권의 시집 중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책이 있나요? 반짝 빛나는 봄이 가기 전, 시집 한 권과 필기구로 기쁜 찰나를 메모로 간직해 보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