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Create Your First Project

Start adding your projects to your portfolio. Click on "Manage Projects" to get started

1주차 초련

Keyword1.

메모

Editor.

초련

메모는 사랑을 싣고,
사랑은 나를 싣고.

나는 좋고 싫음이 명확한 편이다. 책을 읽을 때도 그렇다. 좋아하는 책을 만나면 한 문장마다 감상이 떠올라서 읽다, 생각하다를 반복하느라 읽는 속도가 눈에 띄게 더뎌진다. 문장에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이나 핸드폰 메모장에 짧은 생각을 적고, 결국엔 책 한 권을 통째로 필사하듯 옮겨 적는다. 그렇게 두서없이 마구 쏟아낸 메모들은 마치 나와 그 책 사이에 오가는 대화 같다. 머릿속 생각이 문장을 그늘삼아 앉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마음이 끌리지 않는 책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감상이 아니라 분석이 먼저 나온다. 문장을 분해하고 문맥적 구조를 뜯어보며 읽는다. 이런 식의 독서는 푸석푸석 말라있지만, 그마저도 나에겐 의미 있는 시간이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책과 반응하고 있다는걸 보여주니까. 이처럼 책을 읽으며 남긴 메모는, 그 책이 내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걸었는지 또 내 대답은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 된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이 내 평생의 꿈인 적이 있다. 내 파릇했던 학창시절을 다 바칠만큼 의미있는 꿈이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많은 책이 모여있는 장소가 주는 공기, 냄새, 온도가 있다. 보드라운 이불에 푹 감싸지는 포근함이 느껴진다. 도서관의 책들은 수십 수백의 사람들의 손에 어루만져져 모서리가 둥글려지고 종이는 묘하게 표면에 보풀이 일어 보송해진다. 서점에 새로 깔려 표지가 빤딱빤딱하고 모서리가 뾰족하게 바짝 선 책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마치 누런 시고르자브종을 마구 주물럭대는듯한 꼬수움이 느껴진달까.

그런 손때묻은 도서관 책 속에 가끔 지난 이의 메모가 남겨져 있을 때가 있다. 살풋 꽂혀있는 종이라든가, 미처 떼어내지 못한 인덱스같은 것들. ‘공공의 책을 깨끗하게 봐야지!’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그 메모를 읽는 것이 재밌다. 메모를 발견한 날은 나만의 럭키데이가 된달까. 내가 문장마다 미주알고주알 감상을 덧붙이는 것이 책이 마음에 든다는 표현인 것 처럼 ‘이 부분 너무 마음에 들어!’라는 무성의 표현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아 기쁘다. 그럼 괜시리 읽으려던 책이 아닌데도 그 자리에 가만 서서 읽어내리게 된다.

누군가의 메모가 남아 있는 책을 읽을 때면, 그 사람의 자리에 내가 조용히 앉아 보는 기분이 든다. 그 문장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책을 읽던 그날의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 알 수는 없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책은 혼자 읽는 것이지만, 때로 그 안에는 깜짝 선물같은 타인의 마음이 들어 있다. 그런 메모는 짧지만 깊은 문장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좁혀주는 다리가 된다.

나는 오늘도 도서관에 간다. 오늘이 럭키 데이일까 기대하면서!

리에이크매거진 미니로고

주식회사 리에이크 | Copyright © ryake. All rights reserved.

  • Instagram
  • YouTube
  • TikTok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