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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 영영
Keyword2.
고백
Editor.
영영
고백을 적기 위해, 『파과』를 꺼냈습니다
사라진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류, 아직은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파과 中)
오늘도 책을 통해 고백을 배워봅니다.
고백이라는 말을 떠올리다 보면 꼭 사랑 고백만 생각나는 것 같지만, 저는 『파과』를 읽으면서 조금 다른 고백의 형태를 읽게 된 날을 써내려가 봅니다. 이미 삶의 대부분을 외면과 침묵 속에서 살아온 사람인 조각이, 자신의 삶 속에서 고백할 일이 생겼다는 것은 저를 전율하게 만듭니다.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하며 감정을 들키지 않고 살아왔던 조각이,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여는 이야기들은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조각. 해우. 투우. 류. 조.
이름들이 참으로 사람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맴돌 뿐인 이름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사람의 것인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사람 같지 않아도 사람으로 살아온 날들을 받아들여달라는 마음을 고백한 걸까요?
배회하던 숲의 이름이란 어쩌면 기억이었던가를
(파과 中)
책 속 조각이 맴도는 숲은 어둡고 복잡한 마음의 공간이자, 길을 잃은 감정들이 숨을 쉬게 합니다. 배회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숲 속을 헤매며 스스로도 모르는 감정과 마주하고, 때로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잊은 채 살아가곤 하니까요. 조각의 고백은 숲 속에서 배회하는 기쁨의 일처럼 읽혀졌습니다.
기억이라는 이름의 숲을 한 걸음씩 걸어가며, 감추었던 내 삶의 진실과 마주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고백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감춰진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는 용기일 겁니다. 그 기억들은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달콤하기도 하기에 고백은 늘 두려움과 설렘을 함께 품습니다.
고백은 마음 속 숲의 이름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며,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일겁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나와 마주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살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나는 그 숲에서 한 조각의 빛을 찾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숲을 지나야만 비로소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이 아닌 자신의 희미하고 질척이는 그림자가 마음 속에 있어서
방랑하는 기억의 목록을 도열하고 가두어진 말들을 입 밖으로 소환해내는 것 같다
(파과 中)
어쩌면 고백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백은 스스로를 꺼내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털어놓는 순간. 그런 순간이 바로 고백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조각이라는 사람이 아주 조금 열린 마음으로 누군가를 바라볼 때, 그 조용한 용기가 깊게 칼날처럼 파고드는 밤입니다. 책을 덮어도, 과일의 달큰한 끝맛처럼 조각의 고백이 자꾸만 입 안을 맴돌았습니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을 고백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의 삶 한마디를 용기 내어 건네는 것, 그것도 분명한 고백일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고백하고 있나요 ?
삶의 고백을 또 한번 마주하기 위해, 이번주는 퇴근 후 파과를 보러 영화관에 가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