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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차 능소화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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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ditor.
능소화 (1기)
여행 중 만나는 또 다른 여행
회색 벽돌 가득한 역, 푸른 들판, 윤슬이 반짝이는 호수. 터널을 지날 때마다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창밖은 내가 기차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 예측할 수 없는 전환은 재즈와 닮아 있다. 재즈는 정해진 악보에 얽매이지 않고 연주자의 감정과 호흡에 따라 매 순간 새롭게 해석된다. 그래서인지 기차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재즈를 찾게 된다. 생전 처음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도 그랬다. 그때 들었던 곡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 곡이 있다. 마치 기차 안의 조용한 객실처럼 고요한 울림을 남긴, Chet Baker의 Blue Room이다.
Blue Room은 1926년 뮤지컬 The Girl Friend를 위해 리처드 로저스가 작곡하고 로렌츠 하트가 작사한 곡이다. Chet Baker는 이를 특유의 나른한 보컬과 부드럽고 서정적인 트럼펫으로 풀어냈다. 혼인한 남자가 배우자에게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듯한 가사가 끝나고 이어지는 트럼펫과 피아노의 선율은 정적인 듯하지만 그 안에 다양한 감정들이 숨어 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창 밖 풍경처럼, 그의 연주의 순간마다 다른 감정이 흐른다.
기차가 선사하는 풍경이 매번 다르듯, Blue Room 역시 청자의 감정에 따라 다른 인상을 남긴다. 더블베이스, 피아노, 트럼펫이 각기 다른 색채로 공간을 채우고, 숨을 고르는 짧은 순간마저 음악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조용히 흐르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이 곡은, 여행 중 만나는 또 하나의 여행 같은 경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