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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차 바서
Keyword3.
여행
Editor.
바서
어른에게도 여름방학은 필요하다
여행이란 키워드를 두고 어떤 작품과 매치하면 좋을지 며칠을 고민만 하다가 왓챠피디아의 그간 평가한 작품목록을 들여다봤다. 매섭게 뜬 눈으로 리스트를 훑다가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없어, 누워있던 매트리스에 툭 핸드폰을 던진다. 날이 급격하게 더워진 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에어컨 리모컨을 들며 바깥 창을 내다보다 키우는 식물들을 쳐다본다. 아아 갑자기 나뭇잎을 뒤집어쓴 한 남자와 소년이 떠오른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여름과 여행이 딱 교집합으로 어울리는 영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기쿠지로의 여름>이다.
기쿠지로의 여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아이와 어른이 엄마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정리할 수 있어요. 모두가 기다리는 여름방학을 좋아하지 않는 한 소년은 부모님이 없기 때문에 울상입니다. 그렇게 잠시 할머니가 없는 틈을 타 멀리 떠난 엄마의 주소를 발견하고 여행을 떠나게 되는 그런 얘기입니다. 억지스러운 전개지만, 친절한 이웃집 아줌마는 그런 소년이 걱정돼 놀고먹는 야쿠자인 자기 남편(기타노 다케시 분)을 대동시켜요. 순수한 아이와 타락한 어른 정말 안 어울리는 한 쌍이나 다름없죠. 벌써 둘의 여행을 뜯어말리고 싶은 마음을 하늘이 알기라도 한 듯 엉망진창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경마장에 가고 사람들과 다투는 야쿠자는 엄마를 찾는 일에는 관심 밖이었습니다마는 둘의 동행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대비감에도 공통점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마치 야쿠자에게도 늦은 여름방학이 시작된 것처럼 말이에요. 소년의 동심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상처받은 아이를 마주하게 되는 장면들을 포착할 수 있는데요. 야쿠자답게 거칠고 무뚝뚝한 모습이었지만, 아이스크림을 사주거나, 게임을 해주고, 결정적으로 소년이 실망하지 않도록 거짓말을 해주는 모습을 통해 투박한 친절함을 느낄 수 있어요. 이런 행동들이 사실은 자신이 어린 시절 받고 싶었던 사랑이었지만, 소년에게 보이고 있죠.
하지만 영화의 진짜 반전은 마지막에 나옵니다. 여행이 끝나고 소년이 야쿠자에게 묻죠.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그때서야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이 여행은 소년을 위한 게 아니라 기쿠지로 자신을 위한, 어른의 여름방학이었다는 걸요.
어른이 된 후 잊고 살았던 순수함을 되찾는 과정, 그것이 바로 여행이 아닐까요?
저 역시 혼자 떠났던 일본 여행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떠났던 여행이었는데, 길을 걸으며 만난 할머니들과의 대화,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현지 사람들과의 소소한 교감을 통해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거든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제게 보여준 작은 친절들이, 마치 기쿠지로가 마사오(소년)에게 보여준 투박한 사랑처럼 느껴졌어요.
엄마를 찾는 일은 단순히 표면적인 주제였고, 사실 기쿠지로 자신을 위한, 그의 여름방학이었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통해 자신의 잃어버린 순수함과 동심을 되찾고,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처럼 말이죠. 여행의 본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딘가를 가는 건 그 장소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여행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기 위해서인 것 같거든요.
기쿠지로는 소년에게 말합니다. 또 엄마를 찾으러 가자고. 그들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엄마를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행과 또다른 성장과 함께 말이죠.
당신에게도 늦은 여름방학이 필요하지 않나요? 어딘가로 떠나 잊고 있던 자신을 만나보는 시간 말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