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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 고진

Keyword4.

자유주제

Editor.

고진

탐정 유덕화와 함께하는 헤실헤실

2014년에 개봉한 홍콩영화 <블라인드 디텍티브>는 두기봉 감독(한국사람 아닙니다), 유덕화 주연의 코미디 추리극이라고 할까요. 캐나다에 사는 찐-CRAZY-영화광인 영화감독 친구가 추천해줬습니다. 그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영화를 보고, 짧은 장면에서 과거의 오마주까지도 금세 알아맞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껏 그런 괴물은 본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 친구가 별안간 추천해준 영화이기에 꽤 긴장하고 봤는데요. 유치했습니다. 심각하게 골몰할 내용 따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참 좋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지한 사람은 가벼운 걸 좀 봐줘야 하고, 가벼운 사람은 가끔씩 진지한 걸 취급해줘야 한다고요. 사람이 한쪽으로만 발달하게 되면, 근육도 그렇잖아요. 일단 보기에 이상해집니다. 그리고 아파집니다. 나중에 되돌이키는 건 너무 힘든 일입니다. 한해 한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문득 두려움에 휩싸이곤 하는데요. 내가 벌써 굳어버린 건 아닌지, 아무도 내게 겁을 주지 않았는데 혼자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죠. 난 이제 틀린 건가, 누가 뭐라고 해도 바뀌기가 힘들게 된 건가, 늦어버린 건가... OTL... (OTL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벌써 나이가...) 극진보의 삶을 살았다고 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과거를 가졌지만, 점점 지키고 싶은 것들이 늘어갑니다. 우선 내가 있는 공간의 고요를 유지했으면 좋겠고요(시끄러운 놈들 다 나가), 새로운 음식 같은 건 됐으니 즐겨 먹는 카레나 칼국수, 육개장 같은 것만 줄창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후배나 후임이 있으면 적당히 알아서 잘했으면 좋겠고요, 나에게 상식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하다가 답답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이렇게 저는 완성형 꼰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에게는 <블라인드 디텍티브>가 딱이었습니다. 2025년에 보기엔 결말이 어떻게 될지 훤히 보이는 진부한 스토리였거든요. 영화 속 성역할도 상당히 보수적이었죠. 그런데 웃겼습니다. 편했습니다. 전혀 신경을 곤두 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거슬리지도 않았어요. 20년 넘게 설렁설렁 살다가, 이후의 시간 동안 사회에 찌들어버린 저는 계획형 예민보스가 되어버렸는데요. 그런 저를 향해 ‘야, 너는 뭘 그렇게- 여유도 없고 재미도 없고’라고 말하면서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그 굵은 선의 유덕화 얼굴이... (부들부들)

독립영화가 제일이라던 고집쟁이였는데 뒤늦게 상업극의 묘미를 맛보는 중입니다. 옛날 영화와의 애정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지나친 현실주의, 찌든 삶의 반발이 시작된 것 같네요. 여러분도 킬링타임으로 탐정 유덕화의 영화를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냥 헤실헤실 편하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힘을 내는 것이죠. 헤실헤실을 조금이라도 이어가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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