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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 바서

Keyword4.

자유주제

Editor.

바서

지킬 것이 많은 삶

사용하던 작업실을 퇴거할 때였다. 안 그래도 작은 집에 작업실 짐이 물밀이 들어듯 흘러들어와 아수라판이 되었다. 짐을 보고만 있어도 머리에 열이 지끈지끈날 정도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몇날며칠을 미루고서야 주말이 되어 시간이 났다.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매번 쓰지도 않는 잡동사니들을 박스에 습관적으로 정리하면서 이 오래된 물건들이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흘러왔는지, 내가 자주 사용하는 물건 리스트에도 들어가지 않는 짐들을 또 정리하고 있는 내 행동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모든 물건을 새것 그대로 보관하는 습관이 있었다. 아끼다 똥 된다는 속담이 있지 않는가, 딱 그 말에 걸맞은 사람처럼 새 물건을 아끼고 아끼다 쓸 시기를 지나 다 버려지거나, 혹은 괜한 아쉬움에 버리지도 못하고 보관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물질적인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도,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을 때의 편안함을 원했던 것 같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물건 더미에 둘러싸여 한숨을 내쉬는 내가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처럼 느껴졌다. 히라야마에게 정해진 루틴과 규칙을 침해받는 것이 거부감을 느끼게 하고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처럼, 내게도 필요가 있든 없든 가지고 있는 물건이 그 자리 그대로 있어야 하고,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다. 모든 것이 욕심에 기인된 것 같기도 했다.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는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입니다. 그는 규칙적인 삶을 통해 자신의 작은 행복, 즉 자신만의 세상에 집중하여 살아가는 사람으로 표현되는데요. 본업인 화장실 청소도 허투루하지 않고 꼼꼼히 해나가며, 점심은 항상 같은 장소 같은 음식을 먹습니다. 그런 그의 완벽한 루틴을 보고 있자면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 반대로 자신의 반복되는 루틴을 강박적으로 지켜내려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런 강박적인 느낌은 단순히 그가 삶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히라야마가 정확히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추상적으로만 표현되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의 규칙적인 일상에 외부인의 방해를 받으면 급격히 취약해지는 그의 모습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많은 부분에서 히라야마처럼 살아왔기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의 변화를 가장 두려워했고 걱정부터 앞섰으며, 모든 물건들이 낡지 않고 새것처럼 그대로이길 바랐고, 새로운 사람이 다가와도 두려움부터 앞섰거든요. 내 울타리에 누군가가 침범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대를 넘어 30대에 들어서다 보니 이런 제한적인 행동이 저의 성장에 많은 걸림돌이 되더라고요. 왜 그렇게 방어적이었나 생각해 보니 ‘실패’라는 관점에 매몰되는 제 부정적 성향 때문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실패에 쉽게 회복하는 친구들이 있는 반면, 저는 실패라는 단어에 굉장히 취약했던 것 같아요. 그것이 저를 파고들었고, 오랫동안 그것에만 매몰되어 있었어요. 어렸을 때 미술 학원에서도 실력이 빠르게 느는 친구들을 보면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던 모습들이 있었거든요. 전 그렇지 못했습니다. 실패해도 저라는 사람이 부정당하는 것이 아닌데 뭐가 그렇게 두렵고 무서웠는지 모르겠어요.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쉽사리 뒤바꿀 순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완벽과 실패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새로 제안해 보기도 하고, 쓰는 물건과 쓰지 않는 물건을 이성적으로 판단해 과감히 버리기도 합니다. 마치 덤덤한 표정으로 일상을 살아내던 히라야마가 결말에 가서는 행복과 슬픔 사이의 다양한 감정 표현을 내보이며, 외부의 충격에 초연해지는 모습처럼요. 이런 행동들이 제 인생에 플러스가 되고 나서야 오히려 홀가분해졌던 것 같아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지킬 것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지켜야 할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요. 히라야마처럼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지키려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물이 변하는 것처럼 모든 게 제자리일 순 없는 것이니까요.

여러분에게도 정말 지키고 싶은 것과 단순히 놓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구분해본 적이 있나요?
지킬 것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정말 소중한 몇 가지만 지키면 되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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