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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 초련

Keyword4.

자유주제

Editor.

초련

말 모으는 사람

나는 ‘말’을 수집한다. 누군가는 바이닐을 모으고, 누군가는 우표를 모으듯이. 주변사람들과 말할때는 말을 ‘줍는다’고도 표현한다. 휴대폰으로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같은 SNS를 휙휙 넘기다가 마음에 남는 단어를 발견하면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는 것으로 시작했다. 뜻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더라도 어감이 예쁘거나, 마음 어딘가를 툭 건드리는 말들이 있다. 그 단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꾸준히 적어두다 보니, 짧은 단어뿐만 아니라 문구가 되고 문장까지 확장되었다.

필명이라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초련’이라는 이름도 그렇게 우연히 모은 말 중 하나였다. 무료함을 달래려 인스타그램을 넘기다 발견했었다. 초련은 ‘처음 초(初)’, ‘그리워할 련(戀)’으로 첫사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첫사랑이란 뜻에 그리움이란 감정을 포함해 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첫사랑은 사실 아름답고 찬란하기만 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찢어지게 가슴아프고 그리워 사무치는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 모든 이들을 그저 아름답기만한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아렸던 그리움까지 기록하자는 의미를 담아 필명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 기록에도 몇 가지 말을 기억해두려 한다.

- 봄꿈
‘봄꿈’이라는 단어는 말그대로 ‘봄에 꾸는 꿈’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달콤하고 행복한 것을 그려보는 꿈’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봄이라는 말은 언제나 부드럽고 이상향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다. 따스한 햇살, 새싹, 연둣빛 혹은 연한 분홍빛. 나는 ‘봄꿈’이라는 말 안에 담긴 상상력과 위로에 마음을 뺏겼다.
나의 봄꿈은 무엇일까, 당신의 봄꿈은 또 어떤 모습일까, 문득 묻고 싶다.
당신의 봄꿈은 무엇인가요?

- 맘이 가난한 밤
음악은 그 리듬과 맬로디를 타고 내 귓속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단어들을 느낄 수 있다. 아이유는 워낙 작사를 잘하기로 유명한 아티스트라 가슴을 울리는 시적인 가사들이 많다.
2021년 발매된 <라일락>이라는 앨범 중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이 있다.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맘이 가난한 밤이야"라는 가사를 보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 자신을 사랑해주지 못하는 나에게 왜 사랑해주지 않냐며 다그쳐봤자 또 내 마음에 생채기 내는 짓이었던거라. 마음이 가난하다는게 그렇게 아프고 서글픈 말임과 동시에 위로가 되는 가사였다.
내 안의 아이야. 이제 그만 울자.

- I love you to the moon and back
“I love you to the moon and back.”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출처는 알 수 없지만 '달을 왕복할 만큼 너를 사랑해' 라는 뜻이다. 사랑의 양을 양팔벌려 가늠하듯 쓴 말일까 싶었다.
그런데 사람 심장이 평생 뛰는 운동량은 지구에서 달까지 차로 한번 왕복할 수 있는 힘과 같다고 한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달까지 왕복할만큼 사랑한다’는 말은 정말로 온몸을 다해, 삶 전체를 걸고 사랑한다는 뜻일 것이다. 참 낭만적이기도 하면서 가슴이 아리기도 한 문구다.
‘평생 심장이 뛰는 만큼’ 누군가를 사랑해 볼 수 있을까.

- 능소화
한여름에 어떤 담벼락이든 찬란한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능소화를 아는가. 중학교 시절 학교 벽을 타고 자라던 능소화는 푹푹 찌는 더운 날씨 속 체육시간의 볼거리였고, 하교 후 선생님들 몰래 찍어바른 틴트로 입술이 마치 능소화처럼 붉어진 여학생들의 포토스팟이었다.
능소화는 업신여길 능(凌), 하늘 소(霄), 꽃 화(花)를 쓴다. 즉, 하늘을 업신여기는 꽃이라는 뜻이다. 여름이면 비도 많이 오고 흙도 촉촉해질테니 식물이 자라기 좋은 계절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식물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한 오해였다. 여름은 온갖 태풍이며 적당히를 넘어선 장마에 타들어가는 더위로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능소화는 궂은 날씨를 업신여기듯 한껏 피어나서 능소화인 것이다.
내 학창시절 여름의 페이지를 가득 채워주던 네가 그렇게 독하게 피어나고 있었다니. 꽃에게도 존경을 느낀다.
능소화의 시간이 돌아왔다. 하늘을 향해 코웃음 3회 실시!

나는 왜 단어를 모으는 걸까. 그냥 스쳐지나가면서 ‘음 좋은 말이군!’하면 될 것을 휴대폰 메모장이고 포스트잇이고 적어놓는 심리는 무엇일까.
아마도 언어는 감정을 담아 오래 남게 만드는 유일한 그릇이라서.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들을 담아두고, 언젠가 꺼내 다시 들여다보려는 나만의 방식인 것 같다. 단어는 흐릿해지는 기억을 붙잡아주고, 그때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내 휴대폰 메모장에는 ‘말’이 기록된다.

사라지지 않게.
잊히지 않게.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건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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