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7년이 넘은, 이제는 입지 못하는 잠옷이 있습니다. 제가 어린이집 다니기 이전 시절부터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할머니께서 저와 제 동생을 주로 돌봐주셨습니다. 부모님께서 맞벌이시고 엄마는 저녁 6~7시쯤, 아빠는 보통 9~10시쯤 퇴근하셔서, 할머니께서 평일에 저와 동생을 돌봐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6~7시가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10년 가까이 돌봐주셨어요. 같이 살았으면 좋었겠건만 할머니께서 주말엔 꼭 집에 가고 싶으셨는지 일요일에 고속버스를 타고 오시면 부모님이 터미널에서 모셔서 집으로 오시고 저희 집에 오시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돌봐주셨다가 다시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 부모님께서 할머니를 다시 터미널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매 주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시며 힘들게 왔다갔다 하셨죠.
할머니의 일상은 저희 집 청소, 마실 나사기, 운동가기였고 가끔은 친구도 사귀셨어요. 저와 동생이 집에 오면 간식 해주시고 공부할 때는 옆에서 격려해주시며 저희를 돌봐주셨어요. 거의 엄마아빠 일을 도맡아 하셨어요. 자금 생각하면 찡하답니다ㅠㅠ 퇴근하면 힘들 엄마를 생각해 맛있는 밑반찬도 많이 해주셨어요. 엄마의 엄마인지라 할머니께서는 설거지까지 도맡아 하시려고 하면 저희 엄마한테 한소리 듣기도 했죠 ㅎ그렇게 10년을 저희를 돌봐주시며 애착도 많이 형성됐고, 할머니께서는 저에게 정말 큰, 소중한 존재가 되셨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인가, 할머니께서 동네 속옷집에서 저와 제 동생 잠옷을 사오셨습니다. 제 잠옷 안에는 기모가 두툼이 있어 따뜻했고 작은 트리 무늬가 새겨져 있어서 정말 귀여웠습니다. 사오신 날 정말 기뻐하며 입어봤는데 그때는 옷이 너무 커서 할머니께서 윗도리 소매, 아랫도리 단을 줄여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사와주신 게 너무 감사하고 마음에 들어서 날씨가 추워지면 꼭 그 잠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제 최애 잠옷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잠옷을 입는 계절이 여러번 지나니, 성장기인 터라 몸이 커져, 할머니가 박아주신 단을 풀게 됐습니다. 몸이 큰 만큼 마음도 커져 어느덧 저와 동생은 조금 힘들더라도 이제 할머니께서 남은 삶, 더욱 자유를 누리실 수 있도록 해아하는 나이가 됐고, 할머니는 이제 저희 집이 아닌 할머니댁에서 보기로 합니다.
할머니가 가신 뒤에도 여전히 그 잠옷을 꺼내 입었고, 입을 때마다 할머니 생각, 할머니와 저희 집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났습니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총 4~5년을 옷이 해질 때까지 입었습니다. 결국 잠옷이 너무 헤져버려서 이제 옷장 속에 예쁘게 개어 간직하고 있습니다. 옷장 정리할 때 엄마가 이 잠옷 버리자고 했는데 제가 아주 난리를 치고 못 버릭 했어요 ㅎ 그 잠옷만큼은 꼭 간직할 거라고 말하면서요. 우리 할머니에 대한 감사한 마음, 할머니와의 추억, 또 저의 몸과 마음의 성장의 증표가 담겼는데 어떻게 버릴 수 있겠나요. 할머니는 저에게 정말 말로,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존재이시고 잠옷 또한 그렇기에 이 잠옷은 앞으로도 영원히 옷장에 간직할 예정입니다. 아마 특히 맞벌이 가정에 조부모님과 함께 살아보신 분들은 이 감정 정말 잘 아실 거예요. 엄마의 엄마이기에, 우리의 할머니기에, 어느 누구보다 우리 엄마, 아빠를 이해해주시고 나이 70이 넘어서까지 할머니 자신 돌보기도 힘드실텐데 10년동안 우리를 정성껏 보살펴주신 할머니, 저와 동생이 속 썩일 때도 많았는데 전화할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해주시는 할머니, 항상 건강하시면 좋겠고사랑합니다. 리에이크 매거진 관계자분들, 추억이 가득 담긴 옷을 다시한번 떠올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맨 마지막 사진은 할머니가 바지 임시로 줄여주신 흔적입니다 보라색 실 아직까지 남아있는지 몰랐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