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모자를 잃어버렸다. 흰색의 아무 무늬 없는 기본 모자. 나와 같이 일했던 사람은 단번에 알 거다. 일하며 단 한 번도 다른 모자를 쓴 적이 없으니 말이다.
6년 전, 입대한다고 산 모자였다. 주변에서 군대 가면 머리를 미니까 휴가 나오면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해서 샀는데, 한두 번 쓰고는 쓰지 않았다. 난 내 머리가 부끄럽지도 않았고 사실 모자 쓰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할 땐 위생상 써야 되니까 썼지만, 집 가는 길엔 머리가 이상하게 눌렸어도 모자를 늘 벗고 갔다. 그래서 모자에겐 미안하지만 그리 허전하진 않다...고 하려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쉽긴 아쉽다.
몇 달을 제외하고는 최근 2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다. 알바를 두세 개씩 하며 매일 일하기도 했고 직원 제안을 받아 하루 열몇 시간씩 일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늘 그 흰 모자만을 쓰고 다녔다. 요즘 매일 나무젓가락 공예 챌린지를 이어가고 있는데, 치열했던 시기를 함께해 준 것이 새삼 고마워 모자를 조각하기도 했다. 그런 모자를 자전거 벨에 걸어두고 가다가 어느새 보니 없었다는 허무한 이유로 잃어버렸으니, 마음 한편에 느껴지는 약간의 허전함이 아주 유치하게 여겨지진 않는다.
사실 막상 모자를 써보니 꽤나 편리한 부분이 있긴 했다. 머리 손질을 안 했거나 아주 가끔 얼굴을 숨기고 싶을 때 착실하게 자기 역할을 해준다. 그래서 며칠 전에 새 모자를 샀다. 이번엔 갈색이다. 모자 사는 데에 노력을 들이곤 싶지 않아 이번에도 무난하게 흰색의 민무늬를 사려 했는데, 이 친구가 단번에 내 눈에 들어와 곧바로 샀다. 저번처럼 잃어버리지 않는 이상 새로 사는 일은 없을 거다. 앞으로 또 몇 년간은 이 갈색 모자만을 쓰고 다닐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긴 시간을 함께 하길 소박하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