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하나에 당신과 처음 마주했던 내가 어느덧, 스물셋 끄트머리에 홀로 남아 당신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냅니다. 우리가 안녕을 이야기한지도 벌써 몇 달의 시간이 흘렀군요. 지금 당신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요. 어쩌면 나를 온전히 떠나보낸 채 행복하신가요.
내 존재만으로 사랑을 받아본 건 처음이어서. 당신의 그 무조건적인 사랑은 내게 있어 너무나도 큰 마음이어서 지레 겁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당신, 알고 계셨나요? 나 잠든 당신의 포근한 품에 파묻혀, 세상 무엇이든 해낼 것만 같은 그 두툼한 몸 속 숨어있는 굽은 척추를 훑어내리며.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게, 그리고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게 너무나도 행복해 얼마나 많은 눈물 흘렸는지요.
하지만 당신의 그 큰 마음을 받기에 나는 너무나도 어렸고, 또 미숙하고 서툴렀기에. 견고한 줄로만 알았던 우리의 사랑은 사실 현실의 벽 앞에 너무나도 미약한 것이었기에. 당신은 마침내 나를 떠나갔습니다.
당신, 이제는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망가뜨린 당신의 비겁을, 이기적인 내가 그러하였듯 스스로를 가장 연민할 수밖에 없었던 언니의 마음을. 그저 받아들이겠습니다. 자격은 없지만 감히 함부로, 당신과 언니를 용서해요. 그러니 이제는 부디 행복하길 바라요.
그러나 당신,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다면 우리가 한 것 또한 사랑이었다는 것만큼은 기억해줘요.
김광진, <편지>
사연이 선정될 줄 몰랐습니다. 제 마지막 편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리라 생각하니 기분이 꽤나 이상하네요.
저와 J는 나이 차이가 나는 편이었고,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학생이었기에. 연애 초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 나타나면 떠나도 좋다고 했었던 제 말처럼 J는 좋은 사람을 만나 절 떠나갔습니다. 그 과정이 퍽 아름답진 않았지만. 마침내 저희는 미숙하고도 처절한 이별을 했습니다.
서투른 이별의 과정에서 상처받았을 나 자신과, 언니 그리고 오빠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며. 제 마지막 편지를 읽어주신 모두의 행복을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