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렇게 털어놓을 곳을 마련해 주신 리에이크 매거진 감사합니다.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같은 모임에 있어도 데면데면했던 그에게 밤늦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평소라면 낯선 사람의 연락이니 며칠 지나고 읽거나 아예 잊어버렸을 텐데 때마침 심심해서, 잠이 안 와서, 친구들이 다 바빠서... 그렇게 여러 가지가 맞아떨어져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무서웠습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 저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소름끼칠 정도로 제가 좋아하는 주제만 꺼내더군요. 음악 취향이나 영화 취향도, 심지어는 개인적인 성향과 신념도 짜맞춘 듯이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기쁘다가도 한편으로는 계속 의심했어요. 나는 상대를 모르는데 상대는 나를 너무 잘 아는 사람 같다는 점이 저를 계속 불안하게 했습니다.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과 부담감도 한몫했고요.
이런 이유로 저는 은연중에 그에게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렸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그렇게 잘 맞았던... 혹은 잘 맞는 건 아니었더라도 제게 잘 맞춰주던, 갑자기 나타났던 그와 점차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제게 흥미를 느꼈던 이유를 끝까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돌연 선을 긋는 이유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뒤늦게라도 잡아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다른 연인들처럼 오랜 인연도, 각별한 관계도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저는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요. 아주 밑바닥의 속얘기까지 다 털어놓은 우리가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게 우습고 어쩌면 그에게 하소연할 대상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들려줬던 자기 이야기들과, 추천해 줬던 책과 노래를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음악으로 그를 기억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저도 좀 적극적으로 노래 추천을 해줄 걸 그랬나 싶어요.
내년 이맘때가 되면 저는 그를 떠올리게 될 텐데
그는 제 생각을 할까요
신청곡: the academic-lonely this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