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부산에 가 그 애를 처음 만났던 19살의 1월부터 헤어지고 그 애가 경상도로 떠나갔던 20살의 3월까지 1년을 넘는 시간이 여전히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애와는 모든 계절을 함께 했고 모든 처음을 함께 했기에 무슨 일을 해도 어떤 계절이 와도 그 애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겨울의 사랑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그 애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 겨울 우리 지역은 폭설이 내려 차가 잘 다니지 못했고 눈이 오지 않는 날이면 호떡 포장마차에 사람이 붐비곤 했다. 베이지 색 패딩을 입었고 수면 바지는 꺼내지도 않았다는 것마저 생생했지만 그 애와의 추억만은 떠오르지 않았다.
덥고 추운 날 외출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를 위해 그 애는 약속을 잡기보다 전화를 걸었고 그마저도 귀찮아하는 나를 배려해 자주 문자를 남겼다. 나밖에 모르는 그 애가 귀찮았고 내게만 쏟는 관심이 짜증났다. 코가 빨갛게 얼 정도로 찬 바람이 부는데도 손을 잡으려고 주머니에 넣지 않고 빼놓은 그 애의 손을 모른 척했다. 버스를 타고 나를 보러 오느라 식은 핫팩이 싫어 집에서 가져온 새 핫팩을 흔들었다. 그 애는 다시 봄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내가 기다리는 봄에 그 애는 없었다.
1년의 모든 행사를 분명 함께 했을 텐데 그 애와의 성탄절이 기억나지 않는다. 매년 성탄절이 다가오고 그 애가 떠오르면 가끔 사진첩에 들어가 그 애를 만났던 해의 12월 25일을 찾아보지만 그 날의 사진첩은 비어있다. 밥은 같이 먹었었는지 아니면 싸우느라 만나지 않았던 건지 떠올릴 수조차 없다.
찬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나는 다시 그 애를 사랑했지만 그 애는 떠났다. 그 애는 그토록 바라던 봄을 찾아 떠났고 내가 기다리던 그 애가 없던 봄 역시 원망스럽게도 찾아왔다. 어리석었던 내겐 첫사랑이라 서툴렀다는 핑계조차 어울리지 않는다. 단지 그 애와의 1년을 떠올렸을 때 그 애가 내게 주었던 것은 사랑이었음이 분명함을 감사할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애에게 주었던 미운 행동과 마음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원준희 - 사랑은 유리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