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숨결이 눈으로 보이는 겨울을 좋아했어요.
겨우 와인 한 잔에도 비틀대는 그 사람이랑 걸어다니다 보면 추운 줄도 몰랐고,
구석진 곳에서 잠깐 입을 맞추면 연한 포도맛이 났어요.
우리는 서로의 겉옷을 벗어 덮어주기도 하고, 손을 호호 불어주기도 하고, 펑펑 쏟아지는 눈을 같이 보기도 하면서 세 번의 겨울을 함께했어요.
추위를 너무 많이 타는 우리에게 겨울은 퍽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 아니었지만, 우리 둘 이름 앞에 붙는 '겨울연인'같은 수식어는 괜히 욕심이 나기도 하잖아요.
스물에 만난 그 사람은 내 모든 처음이었어요. 어느 겨울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껴안고 울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차곡차곡 모아 편지로 전하기도 했는데. 우리도 결국 가장 보통의 이유로 헤어지게 됐었죠.
처음에는 죽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결코 틀린 게 아니더라고요. 저는 그 뒤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아마 그 사람도 지금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거예요. 우리는 서로를 스쳐보냈고,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매년 이렇게 손발이 시린 초겨울 밤이 오면, 그 사람을 조금은 생각하면서 못다 전한 말을 써 보기도 해요.
우리 헤어진 뒤에도 계절은 돌고 돌아 서로가 없는 세 번째 겨울이 왔네.
이 노래 기억하지? 내가 겨울만 되면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
너랑 이별하고 나서야 이 노래를 제대로 이해하게 됐어.
스치는 건 참 쉬웠는데 보내는 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
네가 없는 몇 번의 겨울을 더 보내면서 나는 참 달라진 것 같아.
그때의 우리가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 너를 스쳐보내면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거든.
여전히 상처에 무너지고, 어제를 미워하고, 사랑을 찾아 헤매면서 젊음을 허비하는 나지만,
이제는 네가 내게 주었던 마음이 어떤 건지 알아. 네가 보여준 그 마음이 나를 더 단단한 세계로 데려다 줬어.
이 드넓은 우주에서, 수십 억 지구에서 너와 스치고 그렇게 이 모든 계절을 함께했다는 건 큰 행운이었어.
그래서 나, 언젠가 단 한 번만 네가 내 삶에 다시 스쳐 준다면.
그때 너를 정말 많이 사랑했다고,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너무 아쉽지만,
여름의 땡볕 같던 너의 사랑을 지지대 삼아, 영그는 가을을 지나, 겨울에도 더이상 시리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고.
이 모든 게 다 네 덕분이라고.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
그러면 나 비로소 너를 스쳐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