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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Club 2nd
1주차 메모 | 누군가의 메모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가 있나요?
2주차 고백 | ‘고백’하면 떠오르는 이야기나 장면이 있나요?
3주차 여행 | 여행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준 콘텐츠가 있나요?
4주차 자유주제 | 여러분의 취향을 자유롭게 소개해 주세요.


4주차 힌무
여름의 한가운데서 겨울 생각
겨울, 좋아하시나요?
이렇게 덥고 습하고 장마가 시작된 여름이면 정반대의 계절인 겨울이 흐릿해지고는 합니다. 한기에 몸이 움츠러들고 피부가 푸석해지는 계절이 희미하게 느껴지죠. 청바지에 다리를 넣을 때 뻣뻣한 감촉이나 샤워 후 손이 닿지 않아 등 에 로션을 바르지 않으면 건조해지는 감각을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춥고, 참 이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더울수록 오늘은 겨울에 대해 말해보려고 해요.
두꺼운 옷은 너무 큰 부피를 만들어서, 여름철의 얇은 옷에 비해 상대방과 물리적인 거리가 생깁니다. 피부와 피부가 닿기까지 번거로움이 생기잖아요. 그러니 겨울이 고독의 상징인 건 불가피한데 어쩌면 고독이란 살갗의 감각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는 반소매 티셔츠와 시원한 바지를 입고 에어컨이 있는 카페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는 분명 억센 눈송이를 흠뻑 맞기도 했어요. 누구도 흔적을 남기지 않은 골목 위로 소복하게 쌓이는 눈을 밟으면서, 발자국의 영광을 선점하면서, 피부 위로 떨어지는 눈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구나 하고요. 다시 계절이 순환되어 찬 바람이 불기 전에 저는 마음의 준비를 할까 봐요. 이번 겨울은 얼마나 추울까? 미리 가늠을 하면서 말이죠.
여름과 겨울은 서로 반대되는 계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날이 더우면 타인과의 접촉이 불쾌하지만 날이 추우면 타인과의 접촉이 간절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생존을 위해서요. 그렇지 않나요? 다른 사람을 껴안았을 때 전해지는 온도는 단순히 따뜻하다, 미지근하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는 어렵고요. 다만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를 끌어안거나 혹은 안기는 순간에…… 징그럽지만 이 감각을 오래전부터 그리워했다는 사실을요. 오랜 시간 잊고 있었기 때문에 잊고 있었다는 자각이 불가능했을 뿐이라는 것을요. 그러니 이렇게 몹시 더운 날, 겨울이 되면 혼자만의 포옹이라도 하자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기 시작하는 여름의 한가운데서 말입니다.
겨울, 좋아하시나요?
이렇게 덥고 습하고 장마가 시작된 여름이면 정반대의 계절인 겨울이 흐릿해지고는 합니다. 한기에 몸이 움츠러들고 피부가 푸석해지는 계절이 희미하게 느껴지죠. 청바지에 다리를 넣을 때 뻣뻣한 감촉이나 샤워 후 손이 닿지 않아 등 에 로션을 바르지 않으면 건조해지는 감각을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춥고, 참 이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더울수록 오늘은 겨울에 대해 말해보려고 해요.
두꺼운 옷은 너무 큰 부피를 만들어서, 여름철의 얇은 옷에 비해 상대방과 물리적인 거리가 생깁니다. 피부와 피부가 닿기까지 번거로움이 생기잖아요. 그러니 겨울이 고독의 상징인 건 불가피한데 어쩌면 고독이란 살갗의 감각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는 반소매 티셔츠와 시원한 바지를 입고 에어컨이 있는 카페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는 분명 억센 눈송이를 흠뻑 맞기도 했어요. 누구도 흔적을 남기지 않은 골목 위로 소복하게 쌓이는 눈을 밟으면서, 발자국의 영광을 선점하면서, 피부 위로 떨어지는 눈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구나 하고요. 다시 계절이 순환되어 찬 바람이 불기 전에 저는 마음의 준비를 할까 봐요. 이번 겨울은 얼마나 추울까? 미리 가늠을 하면서 말이죠.
여름과 겨울은 서로 반대되는 계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날이 더우면 타인과의 접촉이 불쾌하지만 날이 추우면 타인과의 접촉이 간절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생존을 위해서요. 그렇지 않나요? 다른 사람을 껴안았을 때 전해지는 온도는 단순히 따뜻하다, 미지근하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는 어렵고요. 다만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를 끌어안거나 혹은 안기는 순간에…… 징그럽지만 이 감각을 오래전부터 그리워했다는 사실을요. 오랜 시간 잊고 있었기 때문에 잊고 있었다는 자각이 불가능했을 뿐이라는 것을요. 그러니 이렇게 몹시 더운 날, 겨울이 되면 혼자만의 포옹이라도 하자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기 시작하는 여름의 한가운데서 말입니다.


4주차 혜
살고 싶게 만드는 작은 순간들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나는 왜 이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
분명 하루 하루 성실하게 살아가고는 있는 것 같은데, 자꾸만 제자리에 머무는 느낌이 들어 초조해집니다.
특출난 재능을 발견해 큰 성취를 이루는 게 본래 인생의 목적은 아닌지. 그래서 지금 내 한정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지. 지금보다 더 크고 화려한 뜻을 이루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도 그랬습니다. 우연히 잡게 된 절호의 기회, 그토록 바래왔던 큰 꿈.
그것을 이루면 모든 게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죠.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마치고 계약직 음악 교사의 삶은 접어둔 뒤,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멋진 삶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첫 연주를 끝내고 나니 그에게 찾아온 건, 다름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특별했던 순간은 아주 잠깐이었고, 이제 그 ‘일’을 일상처럼 반복하는 일만 남게 된 거죠.
그제서야 그는 깨닫습니다. 인생은 어떤 커다란 순간이 아니라, 그런 순간들을 둘러싼 평범한 날들의 합이라는 것. “살아가고 싶은 마음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다” 주어진 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가보겠다는 고백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당장 큰 꿈을 이루지는 못할지라도 오늘과 내일, 수없이 밀려드는 하루 틈 사이에 어떤 작은 낭만들을 발견하고 인식할 지는 결정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눈 떴을 때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 오늘따라 향긋하게 내려진 더치 커피의 향, 우연히 올려다 본 하늘에 수놓인 주홍빛 노을처럼요. 지극히 평범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소중한 순간들, 이들이 모여 일상이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 가드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모든 순간을 제대로 살아볼 거야.”
무탈한 하루를 보낸 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삶.
오늘 하루, 당신의 일상을 지탱한 작은 낭만은 무엇이었나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나는 왜 이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
분명 하루 하루 성실하게 살아가고는 있는 것 같은데, 자꾸만 제자리에 머무는 느낌이 들어 초조해집니다.
특출난 재능을 발견해 큰 성취를 이루는 게 본래 인생의 목적은 아닌지. 그래서 지금 내 한정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지. 지금보다 더 크고 화려한 뜻을 이루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도 그랬습니다. 우연히 잡게 된 절호의 기회, 그토록 바래왔던 큰 꿈.
그것을 이루면 모든 게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죠.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마치고 계약직 음악 교사의 삶은 접어둔 뒤,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멋진 삶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첫 연주를 끝내고 나니 그에게 찾아온 건, 다름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특별했던 순간은 아주 잠깐이었고, 이제 그 ‘일’을 일상처럼 반복하는 일만 남게 된 거죠.
그제서야 그는 깨닫습니다. 인생은 어떤 커다란 순간이 아니라, 그런 순간들을 둘러싼 평범한 날들의 합이라는 것. “살아가고 싶은 마음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다” 주어진 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가보겠다는 고백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당장 큰 꿈을 이루지는 못할지라도 오늘과 내일, 수없이 밀려드는 하루 틈 사이에 어떤 작은 낭만들을 발견하고 인식할 지는 결정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눈 떴을 때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 오늘따라 향긋하게 내려진 더치 커피의 향, 우연히 올려다 본 하늘에 수놓인 주홍빛 노을처럼요. 지극히 평범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소중한 순간들, 이들이 모여 일상이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 가드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모든 순간을 제대로 살아볼 거야.”
무탈한 하루를 보낸 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삶.
오늘 하루, 당신의 일상을 지탱한 작은 낭만은 무엇이었나요?


4주차 초련
말 모으는 사람
나는 ‘말’을 수집한다. 누군가는 바이닐을 모으고, 누군가는 우표를 모으듯이. 주변사람들과 말할때는 말을 ‘줍는다’고도 표현한다. 휴대폰으로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같은 SNS를 휙휙 넘기다가 마음에 남는 단어를 발견하면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는 것으로 시작했다. 뜻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더라도 어감이 예쁘거나, 마음 어딘가를 툭 건드리는 말들이 있다. 그 단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꾸준히 적어두다 보니, 짧은 단어뿐만 아니라 문구가 되고 문장까지 확장되었다.
필명이라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초련’이라는 이름도 그렇게 우연히 모은 말 중 하나였다. 무료함을 달래려 인스타그램을 넘기다 발견했었다. 초련은 ‘처음 초(初)’, ‘그리워할 련(戀)’으로 첫사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첫사랑이란 뜻에 그리움이란 감정을 포함해 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첫사랑은 사실 아름답고 찬란하기만 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찢어지게 가슴아프고 그리워 사무치는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 모든 이들을 그저 아름답기만한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아렸던 그리움까지 기록하자는 의미를 담아 필명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 기록에도 몇 가지 말을 기억해두려 한다.
- 봄꿈
‘봄꿈’이라는 단어는 말그대로 ‘봄에 꾸는 꿈’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달콤하고 행복한 것을 그려보는 꿈’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봄이라는 말은 언제나 부드럽고 이상향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다. 따스한 햇살, 새싹, 연둣빛 혹은 연한 분홍빛. 나는 ‘봄꿈’이라는 말 안에 담긴 상상력과 위로에 마음을 뺏겼다.
나의 봄꿈은 무엇일까, 당신의 봄꿈은 또 어떤 모습일까, 문득 묻고 싶다.
당신의 봄꿈은 무엇인가요?
- 맘이 가난한 밤
음악은 그 리듬과 맬로디를 타고 내 귓속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단어들을 느낄 수 있다. 아이유는 워낙 작사를 잘하기로 유명한 아 티스트라 가슴을 울리는 시적인 가사들이 많다.
2021년 발매된 <라일락>이라는 앨범 중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이 있다.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맘이 가난한 밤이야"라는 가사를 보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 자신을 사랑해주지 못하는 나에게 왜 사랑해주지 않냐며 다그쳐봤자 또 내 마음에 생채기 내는 짓이었던거라. 마음이 가난하다는게 그렇게 아프고 서글픈 말임과 동시에 위로가 되는 가사였다.
내 안의 아이야. 이제 그만 울자.
- I love you to the moon and back
“I love you to the moon and back.”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출처는 알 수 없지만 '달을 왕복할 만큼 너를 사랑해' 라는 뜻이다. 사랑의 양을 양팔벌려 가늠하듯 쓴 말일까 싶었다.
그런데 사람 심장이 평생 뛰는 운동량은 지구에서 달까지 차로 한번 왕복할 수 있는 힘과 같다고 한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달까지 왕복할만큼 사랑한다’는 말은 정말로 온몸을 다해, 삶 전체를 걸고 사랑한다는 뜻일 것이다. 참 낭만적이기도 하면서 가슴이 아리기도 한 문구다.
‘평생 심장이 뛰는 만큼’ 누군가를 사랑해 볼 수 있을까.
- 능소화
한여름에 어떤 담벼락이든 찬란한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능소화를 아는가. 중학교 시절 학교 벽을 타고 자라던 능소화는 푹푹 찌는 더운 날씨 속 체육시간의 볼거리였고, 하교 후 선생님들 몰래 찍어바른 틴트로 입술이 마치 능소화처럼 붉어진 여학생들의 포토스팟이었다.
능소화는 업신여길 능(凌), 하늘 소(霄), 꽃 화(花)를 쓴다. 즉, 하늘을 업신여기는 꽃이라는 뜻이다. 여름이면 비도 많이 오고 흙도 촉촉해질테니 식물이 자라기 좋은 계절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식물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한 오해였다. 여름은 온갖 태풍이며 적당히를 넘어선 장마에 타들어가는 더위로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능소화는 궂은 날씨를 업신여기듯 한껏 피어나서 능소화인 것이다.
내 학창시절 여름의 페이지를 가득 채워주던 네가 그렇게 독하게 피어나고 있었다니. 꽃에게도 존경을 느낀다.
능소화의 시간이 돌아왔다. 하늘을 향해 코웃음 3회 실시!
나는 왜 단어를 모으는 걸까. 그냥 스쳐지나가면서 ‘음 좋은 말이군!’하면 될 것을 휴대폰 메모장이고 포스트잇이고 적어놓는 심리는 무엇일까.
아마도 언어는 감정을 담아 오래 남게 만드는 유일한 그릇이라서.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들을 담아두고, 언젠가 꺼내 다시 들여다보려는 나만의 방식인 것 같다. 단어는 흐릿해지는 기억을 붙잡아주고, 그때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내 휴대폰 메모장에는 ‘말’이 기록된다.
사라지지 않게.
잊히지 않게.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건낼 수 있게.
나는 ‘말’을 수집한다. 누군가는 바이닐을 모으고, 누군가는 우표를 모으듯이. 주변사람들과 말할때는 말을 ‘줍는다’고도 표현한다. 휴대폰으로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같은 SNS를 휙휙 넘기다가 마음에 남는 단어를 발견하면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는 것으로 시작했다. 뜻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더라도 어감이 예쁘거나, 마음 어딘가를 툭 건드리는 말들이 있다. 그 단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꾸준히 적어두다 보니, 짧은 단어뿐만 아니라 문구가 되고 문장까지 확장되었다.
필명이라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초련’이라는 이름도 그렇게 우연히 모은 말 중 하나였다. 무료함을 달래려 인스타그램을 넘기다 발견했었다. 초련은 ‘처음 초(初)’, ‘그리워할 련(戀)’으로 첫사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첫사랑이란 뜻에 그리움이란 감정을 포함해 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첫사랑은 사실 아름답고 찬란하기만 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찢어지게 가슴아프고 그리워 사무치는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 모든 이들을 그저 아름답기만한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아렸던 그리움까지 기록하자는 의미를 담아 필명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 기록에도 몇 가지 말을 기억해두려 한다.
- 봄꿈
‘봄꿈’이라는 단어는 말그대로 ‘봄에 꾸는 꿈’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달콤하고 행복한 것을 그려보는 꿈’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봄이라는 말은 언제나 부드럽고 이상향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다. 따스한 햇살, 새싹, 연둣빛 혹은 연한 분홍빛. 나는 ‘봄꿈’이라는 말 안에 담긴 상상력과 위로에 마음을 뺏겼다.
나의 봄꿈은 무엇일까, 당신의 봄꿈은 또 어떤 모습일까, 문득 묻고 싶다.
당신의 봄꿈은 무엇인가요?
- 맘이 가난한 밤
음악은 그 리듬과 맬로디를 타고 내 귓속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단어들을 느낄 수 있다. 아이유는 워낙 작사를 잘하기로 유명한 아 티스트라 가슴을 울리는 시적인 가사들이 많다.
2021년 발매된 <라일락>이라는 앨범 중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이 있다.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맘이 가난한 밤이야"라는 가사를 보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 자신을 사랑해주지 못하는 나에게 왜 사랑해주지 않냐며 다그쳐봤자 또 내 마음에 생채기 내는 짓이었던거라. 마음이 가난하다는게 그렇게 아프고 서글픈 말임과 동시에 위로가 되는 가사였다.
내 안의 아이야. 이제 그만 울자.
- I love you to the moon and back
“I love you to the moon and back.”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출처는 알 수 없지만 '달을 왕복할 만큼 너를 사랑해' 라는 뜻이다. 사랑의 양을 양팔벌려 가늠하듯 쓴 말일까 싶었다.
그런데 사람 심장이 평생 뛰는 운동량은 지구에서 달까지 차로 한번 왕복할 수 있는 힘과 같다고 한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달까지 왕복할만큼 사랑한다’는 말은 정말로 온몸을 다해, 삶 전체를 걸고 사랑한다는 뜻일 것이다. 참 낭만적이기도 하면서 가슴이 아리기도 한 문구다.
‘평생 심장이 뛰는 만큼’ 누군가를 사랑해 볼 수 있을까.
- 능소화
한여름에 어떤 담벼락이든 찬란한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능소화를 아는가. 중학교 시절 학교 벽을 타고 자라던 능소화는 푹푹 찌는 더운 날씨 속 체육시간의 볼거리였고, 하교 후 선생님들 몰래 찍어바른 틴트로 입술이 마치 능소화처럼 붉어진 여학생들의 포토스팟이었다.
능소화는 업신여길 능(凌), 하늘 소(霄), 꽃 화(花)를 쓴다. 즉, 하늘을 업신여기는 꽃이라는 뜻이다. 여름이면 비도 많이 오고 흙도 촉촉해질테니 식물이 자라기 좋은 계절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식물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한 오해였다. 여름은 온갖 태풍이며 적당히를 넘어선 장마에 타들어가는 더위로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능소화는 궂은 날씨를 업신여기듯 한껏 피어나서 능소화인 것이다.
내 학창시절 여름의 페이지를 가득 채워주던 네가 그렇게 독하게 피어나고 있었다니. 꽃에게도 존경을 느낀다.
능소화의 시간이 돌아왔다. 하늘을 향해 코웃음 3회 실시!
나는 왜 단어를 모으는 걸까. 그냥 스쳐지나가면서 ‘음 좋은 말이군!’하면 될 것을 휴대폰 메모장이고 포스트잇이고 적어놓는 심리는 무엇일까.
아마도 언어는 감정을 담아 오래 남게 만드는 유일한 그릇이라서.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들을 담아두고, 언젠가 꺼내 다시 들여다보려는 나만의 방식인 것 같다. 단어는 흐릿해지는 기억을 붙잡아주고, 그때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내 휴대폰 메모장에는 ‘말’이 기록된다.
사라지지 않게.
잊히지 않게.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건낼 수 있게.


4주차 이응
‘자유의지’ 그래피티가 남긴 질문
그래피티는 홍대 인근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그중에서도 ‘자유의지’라는 단어는 단연 눈에 띄는데요. 어림잡아 백 개는 훌쩍 넘는 듯해요.
이 단어는 3년 전부터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그저 낙서겠거니 생각했지만, 어느새 골목마다, 전봇대마다, 심지어 쓰레기통에도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자유의지’
툭 써 내려간 듯한 단순한 글씨였지만, 어느새 거리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놓았어요. 어느 날은 RM이, 또 다른 날에는 태용이, 현아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려 더 유명해졌습니다. 그렇게 ‘자유의지’는 홍대 특유의 개성 있는 분위기와 어우러져 도시의 새로운 상징처럼 자리 잡았어요.
하지만 그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인터넷에는 "이건 무슨 뜻인가요?", "누가 왜 쓴 건가요?" 같은 질문들이 끊이지 않았어요.
사실 ‘자유의지’는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오래된 주제입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자유롭게 의지를 갖고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았어요. 반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의지조차 무의식적인 충동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하며, 자유의지는 착각에 불과하다고 했죠.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문구를 쓴 사람에게는 세상을 향한 진솔한 외침이며, 자기 삶을 스스로 써 내려가려는 용기 있는 선언이었을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여전히 홍대 곳곳에 남아 있어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주저하거나 이유 없이 마음이 흔들릴 때, 이 단어를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지금, 이 선택은 정말 나의 것인가?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혹시 누군가가 미리 정해놓은 길 위를 습관처럼 걷고 있는 건 아닐까.
단순한 네 글자, ‘자유의지’. 이 단어를 다시 마주한 그 순간, 마음속 어딘가에서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시작될지도 몰라요.
그래피티는 홍대 인근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그중에서도 ‘자유의지’라는 단어는 단연 눈에 띄는데요. 어림잡아 백 개는 훌쩍 넘는 듯해요.
이 단어는 3년 전부터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그저 낙서겠거니 생각했지만, 어느새 골목마다, 전봇대마다, 심지어 쓰레기통에도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자유의지’
툭 써 내려간 듯한 단순한 글씨였지만, 어느새 거리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놓았어요. 어느 날은 RM이, 또 다른 날에는 태용이, 현아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려 더 유명해졌습니다. 그렇게 ‘자유의지’는 홍대 특유의 개성 있는 분위기와 어우러져 도시의 새로운 상징처럼 자리 잡았어요.
하지만 그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인터넷에는 "이건 무슨 뜻인가요?", "누가 왜 쓴 건가요?" 같은 질문들이 끊이지 않았어요.
사실 ‘자유의지’는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오래된 주제입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자유롭게 의지를 갖고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았어요. 반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의지조차 무의식적인 충동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하며, 자유의지는 착각에 불과하다고 했죠.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문구를 쓴 사람에게는 세상을 향한 진솔한 외침이며, 자기 삶을 스스로 써 내려가려는 용기 있는 선언이었을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여전히 홍대 곳곳에 남아 있어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주저하거나 이유 없이 마음이 흔들릴 때, 이 단어를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지금, 이 선택은 정말 나의 것인가?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혹시 누군가가 미리 정해놓은 길 위를 습관처럼 걷고 있는 건 아닐까.
단순한 네 글자, ‘자유의지’. 이 단어를 다시 마주한 그 순간, 마음속 어딘가에서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시작될지도 몰라요.


4주차 이무로
여름을 좋아하는 방법 3가지
<사막 한가운데에서 먼저 걸어가며 나를 돌아보고 웃던 너, 내 귀에 꽂아놓은 연필을 빼주며 입 맞추던 너, 새 벽에 동시에 어렴풋하게 깨서 서로 허겁지겁 잡던 손, 뜨거운 여름 공기에 얼룩진 화장을 하고 첫차를 기다리던 것. 이런 장면들은 엮이고 엮어서 여름 햇빛을 뚫고 한참 달려온 것처럼 내 목덜미를 갈색빛으로 물들인다. 사랑의 색깔이라고 내보일 수 있는 것이다(변방의 언어로 사랑하며, 이유운)>
올해는 봄이 올까 말까 주춤하다 뜨거운 여름으로 껑충 넘어왔습니다. 저는 사계절 중 여름을 제일 좋아하지 않습니다. 목덜미를 타고 내리는 땀줄기와 숨이 턱 막히는 더위와 습도, 빠르게 부패하는 음식 그리고 벌레들. 저에게는 좋아할 이유를 찾아보기 어려운 계절이지요. 하지만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에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니, 올해는 여름을 좋아하는 방법들을 연구해 보려고 합니다.
1. 여름의 맛을 즐기기
‘여름’하면 떠오르는 맛을 최대한 즐기기. 선홍색의 수분을 가득 머금은 다디단 수박, 소복이 쌓인 설산에 동그랗게 팥이 올라간 팥빙수, 와그작 깨물어 더위를 한 번에 식혀주는 아이스크림, 더운 열기를 피해 시원한 카페에서 마시는 아이스커피. 고소하고 녹진한 콩 국물이 들어간 여름 별미 콩국수. 이렇게 여름의 맛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여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2. 여름의 책 읽기
어떤 대상을 알고 싶고, 좋아하기 전에 해당 소재를 다루는 책을 사서 면밀히 살펴보려는 편입니다. 여름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여름의 색과 맛을 느껴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입니다. 아래에 여름을 다룬 책을 소개합니다. 시원한 에어컨, 선풍기 바람을 쐬며 여름을 얘기하는 책을 읽어보며 이 계절 한껏 누려보려 합니다.
-아무튼 여름, 김신회, 제철소
-우리의 여름에게, 최지은, 창비
-여름의 피부, 이현아, 푸른숲
-첫 여름 완주, 김금희, 무제
-여름은 그곳에 오래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비채
-그 여름의 끝,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3. 여름을 여행하기
여름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장 많이 떠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뜨거운 햇빛과 초록의 향연. 그래서 여름과 물놀이는 빠질 수 없는 조합이기도 하죠. 생기 가득한 여름에 여행을 떠나 좋은 추억을 하나둘 쌓다 보면 여름을 자연스레 좋아하게 될 거예요. 기억에 남는 여름 여행 중 하나는 인천 여행이었습니다. 네스트 호텔의 수영장에 시원하게 물놀이를 하고, 해가 지기 전에 호텔의 아름다운 산책로를 걸으며 ’아, 여름밤 좋다.‘하고 만족했던 여행이었습니다. 올해도 여름 여행을 계획하며 뜨거운 여름을 즐겨볼까 합니다. 여름의 맛, 책, 여행 말고 여름을 즐길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사막 한가운데에서 먼저 걸어가며 나를 돌아보고 웃던 너, 내 귀에 꽂아놓은 연필을 빼주며 입 맞추던 너, 새 벽에 동시에 어렴풋하게 깨서 서로 허겁지겁 잡던 손, 뜨거운 여름 공기에 얼룩진 화장을 하고 첫차를 기다리던 것. 이런 장면들은 엮이고 엮어서 여름 햇빛을 뚫고 한참 달려온 것처럼 내 목덜미를 갈색빛으로 물들인다. 사랑의 색깔이라고 내보일 수 있는 것이다(변방의 언어로 사랑하며, 이유운)>
올해는 봄이 올까 말까 주춤하다 뜨거운 여름으로 껑충 넘어왔습니다. 저는 사계절 중 여름을 제일 좋아하지 않습니다. 목덜미를 타고 내리는 땀줄기와 숨이 턱 막히는 더위와 습도, 빠르게 부패하는 음식 그리고 벌레들. 저에게는 좋아할 이유를 찾아보기 어려운 계절이지요. 하지만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에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니, 올해는 여름을 좋아하는 방법들을 연구해 보려고 합니다.
1. 여름의 맛을 즐기기
‘여름’하면 떠오르는 맛을 최대한 즐기기. 선홍색의 수분을 가득 머금은 다디단 수박, 소복이 쌓인 설산에 동그랗게 팥이 올라간 팥빙수, 와그작 깨물어 더위를 한 번에 식혀주는 아이스크림, 더운 열기를 피해 시원한 카페에서 마시는 아이스커피. 고소하고 녹진한 콩 국물이 들어간 여름 별미 콩국수. 이렇게 여름의 맛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여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2. 여름의 책 읽기
어떤 대상을 알고 싶고, 좋아하기 전에 해당 소재를 다루는 책을 사서 면밀히 살펴보려는 편입니다. 여름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여름의 색과 맛을 느껴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입니다. 아래에 여름을 다룬 책을 소개합니다. 시원한 에어컨, 선풍기 바람을 쐬며 여름을 얘기하는 책을 읽어보며 이 계절 한껏 누려보려 합니다.
-아무튼 여름, 김신회, 제철소
-우리의 여름에게, 최지은, 창비
-여름의 피부, 이현아, 푸른숲
-첫 여름 완주, 김금희, 무제
-여름은 그곳에 오래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비채
-그 여름의 끝,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3. 여름을 여행하기
여름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장 많이 떠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뜨거운 햇빛과 초록의 향연. 그래서 여름과 물놀이는 빠질 수 없는 조합이기도 하죠. 생기 가득한 여름에 여행을 떠나 좋은 추억을 하나둘 쌓다 보면 여름을 자연스레 좋아하게 될 거예요. 기억에 남는 여름 여행 중 하나는 인천 여행이었습니다. 네스트 호텔의 수영장에 시원하게 물놀이를 하고, 해가 지기 전에 호텔의 아름다운 산책로를 걸으며 ’아, 여름밤 좋다.‘하고 만족했던 여행이었습니다. 올해도 여름 여행을 계획하며 뜨거운 여름을 즐겨볼까 합니다. 여름의 맛, 책, 여행 말고 여름을 즐길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4주차 엔슈
자유를 향해, 뛰어!
가끔은 그런 순간이 있다.
머릿속은 수만가지 생각으로 복잡한데 말로는 단 하나의 아이디어도 표현할 수 없는 상태.
무엇인가를 계속 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만 정작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이브 클랭의 사진을 떠올린다.
양복을 입은 남성이 허공을 향해 힘차게 점프하는 사진.
홀가분하게 떠오른 몸과 대조적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텅 빈 거리뿐이다.
떨어지는 중인지 날고 있는 중인지 구분되지 않는 그 장면은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갈린다.
이브 클랭은 이 사진에 ‘공허로의 도약(*Leap into the Void*)’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공허와 도약, 불안과 희망만큼이나 낙차가 큰 두 단어를 연결지은 제목은 꽤나 인상적이다.
그래서인지 아무것도 없는 거리 위로 자신 있게 뛰어내리는 이브 클랭의 얼굴에 번진 미소는 제목과 맞물려 더욱 역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유를 향해 도약한 사람은 늘 그렇게 보인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것처럼,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하지만 도약하는 자는 사실 누구보다 불안의 경계에 가까이 맞닿아 있는 사람이다.
결국 자유는 두려움과 위태로움을 견뎌내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달콤한 축배인 셈이다.
진짜 자유는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아니라 ‘떨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쪽으로 한 발 내딛는 것.
그저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직감에 따라 모든 계산을 멈추고 몸을 움직이는 것.
증명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믿기로 결정하는 것.
지금 당신은, 어떤 자유를 향해 자신을 믿고 뛰고 싶은가?
가끔은 그런 순간이 있다.
머릿속은 수만가지 생각으로 복잡한데 말로는 단 하나의 아이디어도 표현할 수 없는 상태.
무엇인가를 계속 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만 정작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이브 클랭의 사진을 떠올린다.
양복을 입은 남성이 허공을 향해 힘차게 점프하는 사진.
홀가분하게 떠오른 몸과 대조적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텅 빈 거리뿐이다.
떨어지는 중인지 날고 있는 중인지 구분되지 않는 그 장면은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갈린다.
이브 클랭은 이 사진에 ‘공허로의 도약(*Leap into the Void*)’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공허와 도약, 불안과 희망만큼이나 낙차가 큰 두 단어를 연결지은 제목은 꽤나 인상적이다.
그래서인지 아무것도 없는 거리 위로 자신 있게 뛰어내리는 이브 클랭의 얼굴에 번진 미소는 제목과 맞물려 더욱 역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유를 향해 도약한 사람은 늘 그렇게 보인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것처럼,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하지만 도약하는 자는 사실 누구보다 불안의 경계에 가까이 맞닿아 있는 사람이다.
결국 자유는 두려움과 위태로움을 견뎌내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달콤한 축배인 셈이다.
진짜 자유는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아니라 ‘떨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쪽으로 한 발 내딛는 것.
그저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직감에 따라 모든 계산을 멈추고 몸을 움직이는 것.
증명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믿기로 결정하는 것.
지금 당신은, 어떤 자유를 향해 자신을 믿고 뛰고 싶은가?


4주차 영영
내 취향은 너를 꾸준히 사랑하는 일
여러분은 꾸준하게 사랑하고 있는 취향이 있나요?
어느새 찾아온 여름에, 또 다시 국제도서전의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이미 읽어버린 책들이 진열되어 있고, 익숙한 출판사의 부스들이 보이지만, 그 안에서 다시 만나는 문장들은 매번 다른 얼굴로 제게 말을 걸고 있는 듯합니다. 이 책을 향한 반복되는 발걸음이 지루하지 않은 건, 제가 여전히 책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취향을 만들어가는 일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참 닮아 있습니다. 어쩌면 취향은 끝나지 않는 짝사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하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 사랑이 늘 같은 온도와 형태를 가진 것이 아니더라도, 저는 여전히 그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미 펼쳐보았던 책을 다시 들춰보고, 익숙한 문장을 다시 적어보며, 낯익은 책의 공간 속 계단을 천천히 올라갑니다. 물론 늘 같은 척도와 높낮이의 꾸준함으로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어떤 날은 책을 애정하는 일이 힘들게 느껴지고, 또 어떤 날은 기꺼이 벅차오를 만큼 책이 사랑스럽기도 합니다. 가끔은 울고 싶을 정도로 펼칠 종이들이 무겁게 느껴져도, 책에 대한 마음이 너무 커다랗게 느껴질 때면 아무 말 없이 그 사랑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조용히 감상해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꿈꾸게 됩니다. 그저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하루하루의 공간과 시간을 잠식해나가기를, 그러다 결국 나라는 존재와 완전히 겹쳐지기를 바랍니다.
기꺼이 묵묵한 걸음을 택한 사람은, 걷는 기술이 아니라 지치지 않는 마음을 배웁니다. 씨앗은 살갗이 찢겨 나가며 자랍니다. 동공이 탈 것 같은 볕을 견디고, 뼈마디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장마를 통과하며, 그 모든 고통을 껴안은 채 가장 찬란한 색의 꽃으로 피어납니다. 모든 시간을 꾸준히 사랑해 낸 꽃과 같은 저의 취향을 가만히 바라봅니다.여름이 오면, 우리는 어느새 더위와의 싸움에 몰두하곤 합니다. 그러다 잊어버립니다. 우 리가 어떻게 봄을 지켜냈는지, 얼마나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그 초록을 틔워냈는지를. 저는 그 초록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직접 선택하고, 감각하고, 기꺼이 불편해지며 만들어낸 이 취향을. 삶의 궤도를 조금씩 비틀며, 아비투스 가운데 꾸준히 사랑하여 손에 쥔 초록과 같은 무언가를.
그 꾸준한 사랑을, ‘취향’이라 부를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여러분은 꾸준하게 사랑하고 있는 취향이 있나요?
어느새 찾아온 여름에, 또 다시 국제도서전의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이미 읽어버린 책들이 진열되어 있고, 익숙한 출판사의 부스들이 보이지만, 그 안에서 다시 만나는 문장들은 매번 다른 얼굴로 제게 말을 걸고 있는 듯합니다. 이 책을 향한 반복되는 발걸음이 지루하지 않은 건, 제가 여전히 책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취향을 만들어가는 일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참 닮아 있습니다. 어쩌면 취향은 끝나지 않는 짝사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하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 사랑이 늘 같은 온도와 형태를 가진 것이 아니더라도, 저는 여전히 그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미 펼쳐보았던 책을 다시 들춰보고, 익숙한 문장을 다시 적어보며, 낯익은 책의 공간 속 계단을 천천히 올라갑니다. 물론 늘 같은 척도와 높낮이의 꾸준함으로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어떤 날은 책을 애정하는 일이 힘들게 느껴지고, 또 어떤 날은 기꺼이 벅차오를 만큼 책이 사랑스럽기도 합니다. 가끔은 울고 싶을 정도로 펼칠 종이들이 무겁게 느껴져도, 책에 대한 마음이 너무 커다랗게 느껴질 때면 아무 말 없이 그 사랑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조용히 감상해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꿈꾸게 됩니다. 그저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하루하루의 공간과 시간을 잠식해나가기를, 그러다 결국 나라는 존재와 완전히 겹쳐지기를 바랍니다.
기꺼이 묵묵한 걸음을 택한 사람은, 걷는 기술이 아니라 지치지 않는 마음을 배웁니다. 씨앗은 살갗이 찢겨 나가며 자랍니다. 동공이 탈 것 같은 볕을 견디고, 뼈마디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장마를 통과하며, 그 모든 고통을 껴안은 채 가장 찬란한 색의 꽃으로 피어납니다. 모든 시간을 꾸준히 사랑해 낸 꽃과 같은 저의 취향을 가만히 바라봅니다.여름이 오면, 우리는 어느새 더위와의 싸움에 몰두하곤 합니다. 그러다 잊어버립니다. 우 리가 어떻게 봄을 지켜냈는지, 얼마나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그 초록을 틔워냈는지를. 저는 그 초록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직접 선택하고, 감각하고, 기꺼이 불편해지며 만들어낸 이 취향을. 삶의 궤도를 조금씩 비틀며, 아비투스 가운데 꾸준히 사랑하여 손에 쥔 초록과 같은 무언가를.
그 꾸준한 사랑을, ‘취향’이라 부를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4주차 여정
우리들의 영화는 계속된다.
영화를 좋아한다. 친구들 혹은 가족과 함께 가던 극장은 혼자 가는 일이 많아졌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면 가지 않게 되었다. 주로 좋아하는 장르는 SF와 공포영화이다. 꼭 이 두 장르가 아니더라도 대체로 모든 장르의 영화를 좋아한다. 보는 영화가 늘어날수록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는 갈증은 나날이 커져갔지만 쉽지 않았다. 누구와 영화를 보게 되면 끝나고 이 영화에 대해 어땠는지 이야기가 하고 싶은데 대부분 ‘좋다, 싫다’에 대한 대화로 종결이 되었다. 갈증이 커졌다.
어느 날 한 커뮤니티를 통해 영화 소모임을 하게 되었다. 영화 소모임 이름은’ Movie-ing’. 당시 유명하던 드라마 <무빙>과 같은 발음을 가졌다. -ing를 붙이면서 영화가 지속된다는 뜻이었을까. 무작정 모임에 들어갔다. 온라인으로 영화 하나를 정해서 보고오기도 하고 오프라인으로 모여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하였다. 영화가 끝나고 밥을 먹으면서도 카페에 가서도 영화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비로소 내가 원하던 갈증이 채워졌다. 내가 간절히 원하던 것이었다.
소모임이 다 끝나갈 무렵. 나를 포함하여 늦게까지 남은 세 명. 한 분이 영화 뉴스레터를 예전부터 혼자 하고 싶었지만 못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말을 듣고 ‘그럼 저희 셋이 할래요?’라는 말에 소모임 이름과 똑같은 <Movie-ing>이라는 영화 뉴스레터가 탄생했다. 뉴스레터의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는 말. ‘우리들의 영화는 계속된다’ 이 말처럼 뉴스레터를 하면서 말 그대로 우리들의 영화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서로 다른 세 명이 모여서 쉼 없이 영화이야기를 하고 각자 다른 시선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각자 영화 취향도 다르도 전문 분야 영화도 다르지만 ‘영화’라는 공통점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계속이어 나가고 있다. 영화를 한다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배우, 영화감독, 촬영 팀, 영화 소품 팀 등등 영화라는 것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우리는 ‘영화를 한다’ 고 말하지 않고 ‘영화를 계속한다’고 현재진행형으로 말하겠다. 영화라는 매체가 있는 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멈출 리가 없으니까.
영화를 좋아한다. 친구들 혹은 가족과 함께 가던 극장은 혼자 가는 일이 많아졌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면 가지 않게 되었다. 주로 좋아하는 장르는 SF와 공포영화이다. 꼭 이 두 장르가 아니더라도 대체로 모든 장르의 영화를 좋아한다. 보는 영화가 늘어날수록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는 갈증은 나날이 커져갔지만 쉽지 않았다. 누구와 영화를 보게 되면 끝나고 이 영화에 대해 어땠는지 이야기가 하고 싶은데 대부분 ‘좋다, 싫다’에 대한 대화로 종결이 되었다. 갈증이 커졌다.
어느 날 한 커뮤니티를 통해 영화 소모임을 하게 되었다. 영화 소모임 이름은’ Movie-ing’. 당시 유명하던 드라마 <무빙>과 같은 발음을 가졌다. -ing를 붙이면서 영화가 지속된다는 뜻이었을까. 무작정 모임에 들어갔다. 온라인으로 영화 하나를 정해서 보고오기도 하고 오프라인으로 모여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하였다. 영화가 끝나고 밥을 먹으면서도 카페에 가서도 영화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비로소 내가 원하던 갈증이 채워졌다. 내가 간절히 원하던 것이었다.
소모임이 다 끝나갈 무렵. 나를 포함하여 늦게까지 남은 세 명. 한 분이 영화 뉴스레터를 예전부터 혼자 하고 싶었지만 못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말을 듣고 ‘그럼 저희 셋이 할래요?’라는 말에 소모임 이름과 똑같은 <Movie-ing>이라는 영화 뉴스레터가 탄생했다. 뉴스레터의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는 말. ‘우리들의 영화는 계속된다’ 이 말처럼 뉴스레터를 하면서 말 그대로 우리들의 영화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서로 다른 세 명이 모여서 쉼 없이 영화이야기를 하고 각자 다른 시선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각자 영화 취향도 다르도 전문 분야 영화도 다르지만 ‘영화’라는 공통점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계속이어 나가고 있다. 영화를 한다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배우, 영화감독, 촬영 팀, 영화 소품 팀 등등 영화라는 것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우리는 ‘영화를 한다’ 고 말하지 않고 ‘영화를 계속한다’고 현재진행형으로 말하겠다. 영화라는 매체가 있는 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멈출 리가 없으니까.


4주차 약국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파고드는 방법이 있나요?
어떻게 해야될지 모를 때는 주변에 앞서가고 있는 사람을 따라가면 됩니다. 그들을 불러 세워 물어도 좋겠죠.
그래서 주변에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Q.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파고드는 방법이 있나 요?
펑크 무드를 좋아하는 브랜드 디자이너 H
- 펑크를 좋아하는 이유는 ‘계산되지 않은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다행히 지금 속해있는 브랜드와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시너지가 좋아요. 그러다보니 작업하면서 취향이 확장되고 깊어집니다. 작은 디테일 하나가 전체 무드로 번질 때가 많아요. 내 취향에 맞는 작은 디테일 하나, 그걸 끝까지 붙잡고 늘어집니다. 해외 디자인 잡지랑 핀터레스트를 많이 참고해서요. 그걸 중심으로 이렇게 저렇게 만져보다 보면, 내 취향도 브랜드의 컬러도 선명해지더라고요.
Q.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파고드는 방법이 있나요?
등산과 바다를 좋아하는 매거진 에디터 D
- 기사를 쓸 때도, 자연을 찾을 때도 하나만 생각합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자리인가. 그렇게 연휴마다 인적 드문 해안을 찾아냅니다. 태닝도 하고 물질도 하죠. 물질하면서 숨과 귀가 막히며 잔잔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머리와 마음까지 고요해지는데, 이 순간을 좋아합니다. 이때마다 스스로에게 집중하게 되고, 이런 순간이 쌓이면, 내 안의 것이 점점 선명해집니다. 결국 내 취향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나를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요? 계속 걸어보고, 계속 멈춰보세요. 이미 나에게 있는 것을 발견하고 쌓아가면 됩니다.
Q.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파고드는 방법이 있나요?
주짓수하는 포토그래퍼 J
- 사진을 찍을 때도, 매트 위에서도 결국 같은 걸 찾아요. 어떤 순간을 발견하고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하나는 카메라로, 다른 하나는 몸으로 붙잡지 만 본질은 다르지 않아요. 분명한 건 그 순간을 내 걸로 만들기 위해선 끊임 없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어떤 것을 볼 때도 덩어리가 아닌 분자 단위로 쪼개보려고 해요. 그리고 이거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요. 대련을 복기하거나 모르는 기술을 물어보는 식이죠. 그러다보면 내 취향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알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에게도 같은 걸 묻고 싶습니다.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파고드는 방법이 있나요?
어떻게 해야될지 모를 때는 주변에 앞서가고 있는 사람을 따라가면 됩니다. 그들을 불러 세워 물어도 좋겠죠.
그래서 주변에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Q.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파고드는 방법이 있나 요?
펑크 무드를 좋아하는 브랜드 디자이너 H
- 펑크를 좋아하는 이유는 ‘계산되지 않은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다행히 지금 속해있는 브랜드와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시너지가 좋아요. 그러다보니 작업하면서 취향이 확장되고 깊어집니다. 작은 디테일 하나가 전체 무드로 번질 때가 많아요. 내 취향에 맞는 작은 디테일 하나, 그걸 끝까지 붙잡고 늘어집니다. 해외 디자인 잡지랑 핀터레스트를 많이 참고해서요. 그걸 중심으로 이렇게 저렇게 만져보다 보면, 내 취향도 브랜드의 컬러도 선명해지더라고요.
Q.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파고드는 방법이 있나요?
등산과 바다를 좋아하는 매거진 에디터 D
- 기사를 쓸 때도, 자연을 찾을 때도 하나만 생각합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자리인가. 그렇게 연휴마다 인적 드문 해안을 찾아냅니다. 태닝도 하고 물질도 하죠. 물질하면서 숨과 귀가 막히며 잔잔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머리와 마음까지 고요해지는데, 이 순간을 좋아합니다. 이때마다 스스로에게 집중하게 되고, 이런 순간이 쌓이면, 내 안의 것이 점점 선명해집니다. 결국 내 취향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나를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요? 계속 걸어보고, 계속 멈춰보세요. 이미 나에게 있는 것을 발견하고 쌓아가면 됩니다.
Q.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파고드는 방법이 있나요?
주짓수하는 포토그래퍼 J
- 사진을 찍을 때도, 매트 위에서도 결국 같은 걸 찾아요. 어떤 순간을 발견하고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하나는 카메라로, 다른 하나는 몸으로 붙잡지 만 본질은 다르지 않아요. 분명한 건 그 순간을 내 걸로 만들기 위해선 끊임 없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어떤 것을 볼 때도 덩어리가 아닌 분자 단위로 쪼개보려고 해요. 그리고 이거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요. 대련을 복기하거나 모르는 기술을 물어보는 식이죠. 그러다보면 내 취향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알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에게도 같은 걸 묻고 싶습니다.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파고드는 방법이 있나요?


4주차 바서
지킬 것이 많은 삶
사용하던 작업실을 퇴거할 때였다. 안 그래도 작은 집에 작업실 짐이 물밀이 들어듯 흘러들어와 아수라판이 되었다. 짐을 보고만 있어도 머리에 열이 지끈지끈날 정도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몇날며칠을 미루고서야 주말이 되어 시간이 났다.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매번 쓰지도 않 는 잡동사니들을 박스에 습관적으로 정리하면서 이 오래된 물건들이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흘러왔는지, 내가 자주 사용하는 물건 리스트에도 들어가지 않는 짐들을 또 정리하고 있는 내 행동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모든 물건을 새것 그대로 보관하는 습관이 있었다. 아끼다 똥 된다는 속담이 있지 않는가, 딱 그 말에 걸맞은 사람처럼 새 물건을 아끼고 아끼다 쓸 시기를 지나 다 버려지거나, 혹은 괜한 아쉬움에 버리지도 못하고 보관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물질적인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도,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을 때의 편안함을 원했던 것 같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물건 더미에 둘러싸여 한숨을 내쉬는 내가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처럼 느껴졌다. 히라야마에게 정해진 루틴과 규칙을 침해받는 것이 거부감을 느끼게 하고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처럼, 내게도 필요가 있든 없든 가지고 있는 물건이 그 자리 그대로 있어야 하고,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다. 모든 것이 욕심에 기인된 것 같기도 했다.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는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입니다. 그는 규칙적인 삶을 통해 자신의 작은 행복, 즉 자신만의 세상에 집중하여 살아가는 사람으로 표현되는데요. 본업인 화장실 청소도 허투루하지 않고 꼼꼼히 해나가며, 점심은 항상 같은 장소 같은 음식을 먹습니다. 그런 그의 완벽한 루틴을 보고 있자면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 반대로 자신의 반복되는 루틴을 강박적으로 지켜내려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런 강박적인 느낌은 단순히 그가 삶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히라야마가 정확히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추상적으로만 표현되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의 규칙적인 일상에 외부인의 방해를 받으면 급격히 취약해지는 그의 모습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많은 부분에서 히라야마처럼 살아왔기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의 변화를 가장 두려워했고 걱정부터 앞섰으며, 모든 물건들이 낡지 않고 새것처럼 그대로이길 바랐고, 새로운 사람이 다가와도 두려움부터 앞섰거든요. 내 울타리에 누군가가 침범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대를 넘어 30대에 들어서다 보니 이런 제한적인 행동이 저의 성장에 많은 걸림돌이 되더라고요. 왜 그렇게 방어적이었나 생각해 보니 ‘실패’라는 관점에 매몰되는 제 부정적 성향 때문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실패에 쉽게 회복하는 친구들이 있는 반면, 저는 실패라는 단어에 굉장히 취약했던 것 같아요. 그것이 저를 파고들었고, 오랫동안 그것에만 매몰되어 있었어요. 어렸을 때 미술 학원에서도 실력이 빠르게 느는 친구들을 보면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던 모습들이 있었거든요. 전 그렇지 못했습니다. 실패해도 저라는 사람이 부정당하는 것이 아닌데 뭐가 그렇게 두렵고 무서웠는지 모르겠어요.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쉽사리 뒤바꿀 순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완벽과 실패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새로 제안해 보기도 하고, 쓰 는 물건과 쓰지 않는 물건을 이성적으로 판단해 과감히 버리기도 합니다. 마치 덤덤한 표정으로 일상을 살아내던 히라야마가 결말에 가서는 행복과 슬픔 사이의 다양한 감정 표현을 내보이며, 외부의 충격에 초연해지는 모습처럼요. 이런 행동들이 제 인생에 플러스가 되고 나서야 오히려 홀가분해졌던 것 같아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지킬 것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지켜야 할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요. 히라야마처럼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지키려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물이 변하는 것처럼 모든 게 제자리일 순 없는 것이니까요.
여러분에게도 정말 지키고 싶은 것과 단순히 놓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구분해본 적이 있나요?
지킬 것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정말 소중한 몇 가지만 지키면 되는 건 아닐까요?
사용하던 작업실을 퇴거할 때였다. 안 그래도 작은 집에 작업실 짐이 물밀이 들어듯 흘러들어와 아수라판이 되었다. 짐을 보고만 있어도 머리에 열이 지끈지끈날 정도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몇날며칠을 미루고서야 주말이 되어 시간이 났다.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매번 쓰지도 않 는 잡동사니들을 박스에 습관적으로 정리하면서 이 오래된 물건들이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흘러왔는지, 내가 자주 사용하는 물건 리스트에도 들어가지 않는 짐들을 또 정리하고 있는 내 행동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모든 물건을 새것 그대로 보관하는 습관이 있었다. 아끼다 똥 된다는 속담이 있지 않는가, 딱 그 말에 걸맞은 사람처럼 새 물건을 아끼고 아끼다 쓸 시기를 지나 다 버려지거나, 혹은 괜한 아쉬움에 버리지도 못하고 보관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물질적인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도,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을 때의 편안함을 원했던 것 같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물건 더미에 둘러싸여 한숨을 내쉬는 내가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처럼 느껴졌다. 히라야마에게 정해진 루틴과 규칙을 침해받는 것이 거부감을 느끼게 하고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처럼, 내게도 필요가 있든 없든 가지고 있는 물건이 그 자리 그대로 있어야 하고,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다. 모든 것이 욕심에 기인된 것 같기도 했다.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는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입니다. 그는 규칙적인 삶을 통해 자신의 작은 행복, 즉 자신만의 세상에 집중하여 살아가는 사람으로 표현되는데요. 본업인 화장실 청소도 허투루하지 않고 꼼꼼히 해나가며, 점심은 항상 같은 장소 같은 음식을 먹습니다. 그런 그의 완벽한 루틴을 보고 있자면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 반대로 자신의 반복되는 루틴을 강박적으로 지켜내려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런 강박적인 느낌은 단순히 그가 삶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히라야마가 정확히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추상적으로만 표현되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의 규칙적인 일상에 외부인의 방해를 받으면 급격히 취약해지는 그의 모습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많은 부분에서 히라야마처럼 살아왔기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의 변화를 가장 두려워했고 걱정부터 앞섰으며, 모든 물건들이 낡지 않고 새것처럼 그대로이길 바랐고, 새로운 사람이 다가와도 두려움부터 앞섰거든요. 내 울타리에 누군가가 침범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대를 넘어 30대에 들어서다 보니 이런 제한적인 행동이 저의 성장에 많은 걸림돌이 되더라고요. 왜 그렇게 방어적이었나 생각해 보니 ‘실패’라는 관점에 매몰되는 제 부정적 성향 때문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실패에 쉽게 회복하는 친구들이 있는 반면, 저는 실패라는 단어에 굉장히 취약했던 것 같아요. 그것이 저를 파고들었고, 오랫동안 그것에만 매몰되어 있었어요. 어렸을 때 미술 학원에서도 실력이 빠르게 느는 친구들을 보면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던 모습들이 있었거든요. 전 그렇지 못했습니다. 실패해도 저라는 사람이 부정당하는 것이 아닌데 뭐가 그렇게 두렵고 무서웠는지 모르겠어요.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쉽사리 뒤바꿀 순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완벽과 실패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새로 제안해 보기도 하고, 쓰 는 물건과 쓰지 않는 물건을 이성적으로 판단해 과감히 버리기도 합니다. 마치 덤덤한 표정으로 일상을 살아내던 히라야마가 결말에 가서는 행복과 슬픔 사이의 다양한 감정 표현을 내보이며, 외부의 충격에 초연해지는 모습처럼요. 이런 행동들이 제 인생에 플러스가 되고 나서야 오히려 홀가분해졌던 것 같아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지킬 것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지켜야 할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요. 히라야마처럼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지키려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물이 변하는 것처럼 모든 게 제자리일 순 없는 것이니까요.
여러분에게도 정말 지키고 싶은 것과 단순히 놓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구분해본 적이 있나요?
지킬 것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정말 소중한 몇 가지만 지키면 되는 건 아닐까요?


4주차 고진
탐정 유덕화와 함께하는 헤실헤실
2014년에 개봉한 홍콩영화 <블라인드 디텍티브>는 두기봉 감독(한국사람 아닙니다), 유덕화 주연의 코미디 추리극이라고 할까요. 캐나다에 사는 찐-CRAZY-영화광인 영화감독 친구가 추천해줬습니다. 그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영화를 보고, 짧은 장면에서 과 거의 오마주까지도 금세 알아맞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껏 그런 괴물은 본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 친구가 별안간 추천해준 영화이기에 꽤 긴장하고 봤는데요. 유치했습니다. 심각하게 골몰할 내용 따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참 좋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지한 사람은 가벼운 걸 좀 봐줘야 하고, 가벼운 사람은 가끔씩 진지한 걸 취급해줘야 한다고요. 사람이 한쪽으로만 발달하게 되면, 근육도 그렇잖아요. 일단 보기에 이상해집니다. 그리고 아파집니다. 나중에 되돌이키는 건 너무 힘든 일입니다. 한해 한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문득 두려움에 휩싸이곤 하는데요. 내가 벌써 굳어버린 건 아닌지, 아무도 내게 겁을 주지 않았는데 혼자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죠. 난 이제 틀린 건가, 누가 뭐라고 해도 바뀌기가 힘들게 된 건가, 늦어버린 건가... OTL... (OTL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벌써 나이가...) 극진보의 삶을 살았다고 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과거를 가졌지만, 점점 지키고 싶은 것들이 늘어갑니다. 우선 내가 있는 공간의 고요를 유지했으면 좋겠고요(시끄러운 놈들 다 나가), 새로운 음식 같은 건 됐으니 즐겨 먹는 카레나 칼국수, 육개장 같은 것만 줄창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후배나 후임이 있으면 적당히 알아서 잘했으면 좋겠고요, 나에게 상식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하다가 답답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이렇게 저는 완성형 꼰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에게는 <블라인드 디텍티브>가 딱이었습니다. 2025년에 보기엔 결말이 어떻게 될지 훤히 보이는 진부한 스토리였거든요. 영화 속 성역 할도 상당히 보수적이었죠. 그런데 웃겼습니다. 편했습니다. 전혀 신경을 곤두 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거슬리지도 않았어요. 20년 넘게 설렁설렁 살다가, 이후의 시간 동안 사회에 찌들어버린 저는 계획형 예민보스가 되어버렸는데요. 그런 저를 향해 ‘야, 너는 뭘 그렇게- 여유도 없고 재미도 없고’라고 말하면서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그 굵은 선의 유덕화 얼굴이... (부들부들)
독립영화가 제일이라던 고집쟁이였는데 뒤늦게 상업극의 묘미를 맛보는 중입니다. 옛날 영화와의 애정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지나친 현실주의, 찌든 삶의 반발이 시작된 것 같네요. 여러분도 킬링타임으로 탐정 유덕화의 영화를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냥 헤실헤실 편하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힘을 내는 것이죠. 헤실헤실을 조금이라도 이어가면서요.
2014년에 개봉한 홍콩영화 <블라인드 디텍티브>는 두기봉 감독(한국사람 아닙니다), 유덕화 주연의 코미디 추리극이라고 할까요. 캐나다에 사는 찐-CRAZY-영화광인 영화감독 친구가 추천해줬습니다. 그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영화를 보고, 짧은 장면에서 과 거의 오마주까지도 금세 알아맞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껏 그런 괴물은 본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 친구가 별안간 추천해준 영화이기에 꽤 긴장하고 봤는데요. 유치했습니다. 심각하게 골몰할 내용 따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참 좋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지한 사람은 가벼운 걸 좀 봐줘야 하고, 가벼운 사람은 가끔씩 진지한 걸 취급해줘야 한다고요. 사람이 한쪽으로만 발달하게 되면, 근육도 그렇잖아요. 일단 보기에 이상해집니다. 그리고 아파집니다. 나중에 되돌이키는 건 너무 힘든 일입니다. 한해 한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문득 두려움에 휩싸이곤 하는데요. 내가 벌써 굳어버린 건 아닌지, 아무도 내게 겁을 주지 않았는데 혼자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죠. 난 이제 틀린 건가, 누가 뭐라고 해도 바뀌기가 힘들게 된 건가, 늦어버린 건가... OTL... (OTL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벌써 나이가...) 극진보의 삶을 살았다고 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과거를 가졌지만, 점점 지키고 싶은 것들이 늘어갑니다. 우선 내가 있는 공간의 고요를 유지했으면 좋겠고요(시끄러운 놈들 다 나가), 새로운 음식 같은 건 됐으니 즐겨 먹는 카레나 칼국수, 육개장 같은 것만 줄창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후배나 후임이 있으면 적당히 알아서 잘했으면 좋겠고요, 나에게 상식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하다가 답답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이렇게 저는 완성형 꼰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에게는 <블라인드 디텍티브>가 딱이었습니다. 2025년에 보기엔 결말이 어떻게 될지 훤히 보이는 진부한 스토리였거든요. 영화 속 성역 할도 상당히 보수적이었죠. 그런데 웃겼습니다. 편했습니다. 전혀 신경을 곤두 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거슬리지도 않았어요. 20년 넘게 설렁설렁 살다가, 이후의 시간 동안 사회에 찌들어버린 저는 계획형 예민보스가 되어버렸는데요. 그런 저를 향해 ‘야, 너는 뭘 그렇게- 여유도 없고 재미도 없고’라고 말하면서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그 굵은 선의 유덕화 얼굴이... (부들부들)
독립영화가 제일이라던 고집쟁이였는데 뒤늦게 상업극의 묘미를 맛보는 중입니다. 옛날 영화와의 애정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지나친 현실주의, 찌든 삶의 반발이 시작된 것 같네요. 여러분도 킬링타임으로 탐정 유덕화의 영화를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냥 헤실헤실 편하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힘을 내는 것이죠. 헤실헤실을 조금이라도 이어가면서요.


3주차 조이 (1기)
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길
2016년 겨울, 나는 엄마가 울면서 나를 인천공항에서 배웅 해주는데도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미국 으로 향하는 출국길에 발을 딛었다.
미국.
그 곳은 내가 선망 했던 곳이 아닌 그저 도피처였다. ‘한국, 대학교 안, 그 사람들이 숨쉬는 공간 그 곳만 아니 면 돼.’ 대학교 입학을 하자마자 나는 같은 과 학생들에게 심한 왕따를 당했다. 초,중,고를 거치면서 교우 관계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었고, 이런 왕따는 살면서 처음 당해보는지라. 사람이 많이 피폐해져있었다. 미국으로 향하는 길은 ‘도피’ 였다. 그저 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도피’성으로 가는 것이라면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 기어코 아니라고 우기며, 그 당시 우울증으로 올라가지도 않는 입꼬리를 들어올려 씩 웃어보였다. 괜찮다고, 나는 모험을 하러 가는 것이라고. 떠날 때 만큼이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무섭지 않던 나는 이곳 저곳을 많이 여행을 다녔다. 미국에서는 정말이지 현실을 잊기 위한 여행을 많이 선택했다.
첫번째 여행, 뉴욕.
미국 대학교 봄방학에 나는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 가장 저렴한 혼성 숙소를 찾아 예약을 했는데, (혼성숙소가 가장 저렴하다.) 숙소가 너무 골목에 있어 찾지도 못하고 어둑한 밤이 되고 마약을 한 사람들이 길을 거닐거니는 시간이 되고서야 숙소를 찾았다. 숙소를 도착하고 엘레베이터 안에서 얼어버려서 내리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1층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무서웠던 것 같다. 숙소 안에서는 자기 전 술취한 투숙인이 맨몸으로 자기가 안아주겠다며 자기 베드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난다. 그때 나는 이불 끝까지 내 머리 위로 올리고 기도를 했다. 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길.
두번째 거주지이자 여행, 샌디에이고.
나는 미국 대학교 어학 과정을 수료하고 샌디에이고로 향했다. 추가 연수를 하려 계획 했던 것인데. 중부와 남부 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학생들의 분위기도 달랐다. 그 곳의 학생들과 적응을 하지 못했고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는 브라질 친구가 한날 나에게 브라우니 마리화나 (브라우니로 만든 대마초) 를 같이 하러 가지는 권유를 받았다. 그 때도 매일 밤 잠에 들때 기도를 했다. 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길.
그리고 마지막 라스베가스.
한국을 떠나기 몇 주 전 라스베가스 투어를 예약해서 갔다. 나만 혼자였고, 모두 친구가 있었다. 그 중 인도계로 보이는 무리가 있었는데 나에게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보더니 팔로우를 걸었다.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하며 유치하게 나를 놀리는 그들을 보며 나는 팔로우를 받아주지 않았다. ‘쟤 우리가 하는 말 못알아 들을 걸?’ , ‘ 야! 왜 팔로우 안받냐? 뭐 걸리는거 있냐? 역시 아시아 얘들 이란’ 그때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고, 눈물이 왈칵났다. 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길.
미국의 시간들은 대체로 ‘빠르게 지나가길’ 바라는 기도로 이뤄졌다.
‘도피’로 선택한 여행은 대체로 그렇게 끝나는 것 같다 ‘빠르게 지나가길’.
그 이후로 떠난 경주 여행에서도 그랬기에.
지금은 그 선택을 하지 않는다.
대신 ‘빠르게 지나가길’ 이 시간이, 그리고 내가 그 장소로 다시 돌아가 내 ‘행복’ 여행을 다시 만들길.
2016년 겨울, 나는 엄마가 울면서 나를 인천공항에서 배웅 해주는데도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미국 으로 향하는 출국길에 발을 딛었다.
미국.
그 곳은 내가 선망 했던 곳이 아닌 그저 도피처였다. ‘한국, 대학교 안, 그 사람들이 숨쉬는 공간 그 곳만 아니 면 돼.’ 대학교 입학을 하자마자 나는 같은 과 학생들에게 심한 왕따를 당했다. 초,중,고를 거치면서 교우 관계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었고, 이런 왕따는 살면서 처음 당해보는지라. 사람이 많이 피폐해져있었다. 미국으로 향하는 길은 ‘도피’ 였다. 그저 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도피’성으로 가는 것이라면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 기어코 아니라고 우기며, 그 당시 우울증으로 올라가지도 않는 입꼬리를 들어올려 씩 웃어보였다. 괜찮다고, 나는 모험을 하러 가는 것이라고. 떠날 때 만큼이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무섭지 않던 나는 이곳 저곳을 많이 여행을 다녔다. 미국에서는 정말이지 현실을 잊기 위한 여행을 많이 선택했다.
첫번째 여행, 뉴욕.
미국 대학교 봄방학에 나는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 가장 저렴한 혼성 숙소를 찾아 예약을 했는데, (혼성숙소가 가장 저렴하다.) 숙소가 너무 골목에 있어 찾지도 못하고 어둑한 밤이 되고 마약을 한 사람들이 길을 거닐거니는 시간이 되고서야 숙소를 찾았다. 숙소를 도착하고 엘레베이터 안에서 얼어버려서 내리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1층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무서웠던 것 같다. 숙소 안에서는 자기 전 술취한 투숙인이 맨몸으로 자기가 안아주겠다며 자기 베드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난다. 그때 나는 이불 끝까지 내 머리 위로 올리고 기도를 했다. 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길.
두번째 거주지이자 여행, 샌디에이고.
나는 미국 대학교 어학 과정을 수료하고 샌디에이고로 향했다. 추가 연수를 하려 계획 했던 것인데. 중부와 남부 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학생들의 분위기도 달랐다. 그 곳의 학생들과 적응을 하지 못했고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는 브라질 친구가 한날 나에게 브라우니 마리화나 (브라우니로 만든 대마초) 를 같이 하러 가지는 권유를 받았다. 그 때도 매일 밤 잠에 들때 기도를 했다. 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길.
그리고 마지막 라스베가스.
한국을 떠나기 몇 주 전 라스베가스 투어를 예약해서 갔다. 나만 혼자였고, 모두 친구가 있었다. 그 중 인도계로 보이는 무리가 있었는데 나에게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보더니 팔로우를 걸었다.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하며 유치하게 나를 놀리는 그들을 보며 나는 팔로우를 받아주지 않았다. ‘쟤 우리가 하는 말 못알아 들을 걸?’ , ‘ 야! 왜 팔로우 안받냐? 뭐 걸리는거 있냐? 역시 아시아 얘들 이란’ 그때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고, 눈물이 왈칵났다. 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길.
미국의 시간들은 대체로 ‘빠르게 지나가길’ 바라는 기도로 이뤄졌다.
‘도피’로 선택한 여행은 대체로 그렇게 끝나는 것 같다 ‘빠르게 지나가길’.
그 이후로 떠난 경주 여행에서도 그랬기에.
지금은 그 선택을 하지 않는다.
대신 ‘빠르게 지나가길’ 이 시간이, 그리고 내가 그 장소로 다시 돌아가 내 ‘행복’ 여행을 다시 만들길.


3주차 연못 (1기)
여행과 여백은 한 글자 차이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질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 다들 한 번쯤 해 보셨나요? 저는 일상에 권태감을 느낄 때마다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는 편인데요. 그래서 늘 생각했어요. 여행은 내 삶을 잠시 내려놓고 탈출하는 것이라고요. 흔히들 여행을 일종의 ‘도피 ’로 여기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포르투를 다녀온 뒤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포르투 여행은 무계획 그 자체였어요. 준비한 것이라곤 왕복 비행기 티켓 한 장과 숙소가 전부였죠. 그렇게 무방비로 떠나 더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계획이 없다는 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또 누구든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한국에서 6년을 공부했다는 포르투갈 학생과 가벼운 대화를 나눴고,
사진을 찍던 중 장난스럽게 브이를 날리시던 할아버지와 같이 사진을 찍고,
‘김밥 에디션’이라며 와인을 포장해 주신 와인샵 사장님의 농담과
일몰 앞에서 스냅을 찍는 신혼부부를 보며 한마음 한뜻으로 환호하던 사람들.
모든 순간들이 뜻밖의 선물이었어요.
케이블카 탑승 마감 시간도 모르고 간 탓에 가파른 언덕을 올랐던 게 떠올라요.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그 언덕 끝에서 마주한 풍경은 잊을 수 없어요. 그렇게 힘들게 오른 후, 포장해 온 음식에 숟가락이 없어 컵으로 밥을 퍼먹으면서도 친구랑 한참을 웃었네요.
어느 날은 언덕을 열심히 오르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깨닫고 뒤돌았다가 너무 아름다워 감탄하기도 했어요. 그때 친구가 말했어요. ‘잘못 오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야.’ 그 말이 오래도록 남아요. 잘못 든 길은 실수가 아니었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거예요. 어쩌면 우리 삶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나의 선택이 먼 미래에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해도, 그 순간에 머무르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나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이며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맞이하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여백을 주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여행은 현실을 도피해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는 거죠.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삶에도 여백을 만들고 싶지 않으신가요?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질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 다들 한 번쯤 해 보셨나요? 저는 일상에 권태감을 느낄 때마다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는 편인데요. 그래서 늘 생각했어요. 여행은 내 삶을 잠시 내려놓고 탈출하는 것이라고요. 흔히들 여행을 일종의 ‘도피 ’로 여기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포르투를 다녀온 뒤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포르투 여행은 무계획 그 자체였어요. 준비한 것이라곤 왕복 비행기 티켓 한 장과 숙소가 전부였죠. 그렇게 무방비로 떠나 더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계획이 없다는 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또 누구든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한국에서 6년을 공부했다는 포르투갈 학생과 가벼운 대화를 나눴고,
사진을 찍던 중 장난스럽게 브이를 날리시던 할아버지와 같이 사진을 찍고,
‘김밥 에디션’이라며 와인을 포장해 주신 와인샵 사장님의 농담과
일몰 앞에서 스냅을 찍는 신혼부부를 보며 한마음 한뜻으로 환호하던 사람들.
모든 순간들이 뜻밖의 선물이었어요.
케이블카 탑승 마감 시간도 모르고 간 탓에 가파른 언덕을 올랐던 게 떠올라요.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그 언덕 끝에서 마주한 풍경은 잊을 수 없어요. 그렇게 힘들게 오른 후, 포장해 온 음식에 숟가락이 없어 컵으로 밥을 퍼먹으면서도 친구랑 한참을 웃었네요.
어느 날은 언덕을 열심히 오르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깨닫고 뒤돌았다가 너무 아름다워 감탄하기도 했어요. 그때 친구가 말했어요. ‘잘못 오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야.’ 그 말이 오래도록 남아요. 잘못 든 길은 실수가 아니었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거예요. 어쩌면 우리 삶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나의 선택이 먼 미래에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해도, 그 순간에 머무르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나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이며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맞이하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여백을 주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여행은 현실을 도피해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는 거죠.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삶에도 여백을 만들고 싶지 않으신가요?


3주차 수련 (1기)
타인이라는 아득한 여행지로
여행이 타인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과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생각, 해본 적 있나요? 낯선 여행지에서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과 완벽한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 모두 공통적으로 미지 의 세계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곤 하는데요. 오늘 소개할 영화에서도 일상 속에서 타인과 교차하며 자기만의 여행을 떠나는 두 친구가 등장합니다.
1987년에 개봉한 에릭 로메르 감독의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은 네 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시골 소녀인 레네트(조엘 미쿠엘 분)와 도시 소녀 미라벨(제시카 포데 분)의 일상을 조명합니다. 휴가차 시골로 떠난 미라벨은 자전거가 고장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를 우연히 목격한 레네트는 그녀의 자전거를 고쳐주고 둘은 자연스럽게 레네트의 집으로 향합니다. 함께 식사를 하게 된 이들은 대화가 잘 통한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급속도로 친해진 두 사람은 새벽에 ‘블루 아워’를 보기도 하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거나 산책도 하면서 우정의 토대를 만들게 됩니다.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로 올라온 레네트는 미라벨의 제안으로 한 집에 살게 됩니다. 각자의 취향으로 꾸며놓은 방에서 드러나듯 두 사람의 성격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레네트가 당차고 수다스러운 반면 미라벨은 시니컬하고 무뚝뚝했죠.
“동네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일상은 매일 똑같아. 재밌는 일이 전혀 생기지 않아.”
“난 다 재밌던데? 집에 있어도 좋고 밖에 나가면 햇볕에 새들도 있고, 볼거리가 많잖아?”
가치관에서도 차이는 극명했습니다. 무례한 카페 직원을 상대하는 방법, 홈리스를 바라보는 시선, 옳고 그름의 기준 등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로 두 사람은 언쟁해야만 했습니다. 레네트는 미라벨의 무신경함에 자주 화를 냈고, 미라벨은 레네트가 한 입 가지고 두 말하는 사람이라 여기죠.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재밌는 점은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독립적인 레네트는 미라벨 앞에서만큼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나 고민을 서슴없이 털어놓을 수 있고, 일상에 따분함만 느끼던 미라벨은 레네트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먼저 발 벗고 나설 만큼 용기를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즉, 붙어 지내는 만큼 서로에게 거리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 거리감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주기에 함께 있기를 자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레네트와 미라벨이 끝끝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을 보며 저는 두 사람의 후일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작은 바람 하나를 가져봅니다. 아마 레네트와 미라벨은 투닥거리면서도 서로를 목적지로 둔 여행을 쉽게 끝내지 않을 것이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구석구석 탐험하며 타인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거침없이 질주할 것이라고요.
설렘을 안고 도착한 여행지가 실망을 안겨주는 것처럼, 타인의 마음으로 향하는 여정이 늘 긍정적인 결과를 주지 않는다는 것.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몇 번이고 타인에게 기꺼이 뛰어듭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예기치 못한 작은 순간이 우리를 전보다 충만한 사람이 되게끔 이끌어준다는 것을 믿으니까요. 여러분의 여행은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여행이 타인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과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생각, 해본 적 있나요? 낯선 여행지에서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과 완벽한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 모두 공통적으로 미지 의 세계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곤 하는데요. 오늘 소개할 영화에서도 일상 속에서 타인과 교차하며 자기만의 여행을 떠나는 두 친구가 등장합니다.
1987년에 개봉한 에릭 로메르 감독의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은 네 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시골 소녀인 레네트(조엘 미쿠엘 분)와 도시 소녀 미라벨(제시카 포데 분)의 일상을 조명합니다. 휴가차 시골로 떠난 미라벨은 자전거가 고장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를 우연히 목격한 레네트는 그녀의 자전거를 고쳐주고 둘은 자연스럽게 레네트의 집으로 향합니다. 함께 식사를 하게 된 이들은 대화가 잘 통한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급속도로 친해진 두 사람은 새벽에 ‘블루 아워’를 보기도 하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거나 산책도 하면서 우정의 토대를 만들게 됩니다.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로 올라온 레네트는 미라벨의 제안으로 한 집에 살게 됩니다. 각자의 취향으로 꾸며놓은 방에서 드러나듯 두 사람의 성격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레네트가 당차고 수다스러운 반면 미라벨은 시니컬하고 무뚝뚝했죠.
“동네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일상은 매일 똑같아. 재밌는 일이 전혀 생기지 않아.”
“난 다 재밌던데? 집에 있어도 좋고 밖에 나가면 햇볕에 새들도 있고, 볼거리가 많잖아?”
가치관에서도 차이는 극명했습니다. 무례한 카페 직원을 상대하는 방법, 홈리스를 바라보는 시선, 옳고 그름의 기준 등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로 두 사람은 언쟁해야만 했습니다. 레네트는 미라벨의 무신경함에 자주 화를 냈고, 미라벨은 레네트가 한 입 가지고 두 말하는 사람이라 여기죠.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재밌는 점은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독립적인 레네트는 미라벨 앞에서만큼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나 고민을 서슴없이 털어놓을 수 있고, 일상에 따분함만 느끼던 미라벨은 레네트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먼저 발 벗고 나설 만큼 용기를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즉, 붙어 지내는 만큼 서로에게 거리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 거리감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주기에 함께 있기를 자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레네트와 미라벨이 끝끝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을 보며 저는 두 사람의 후일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작은 바람 하나를 가져봅니다. 아마 레네트와 미라벨은 투닥거리면서도 서로를 목적지로 둔 여행을 쉽게 끝내지 않을 것이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구석구석 탐험하며 타인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거침없이 질주할 것이라고요.
설렘을 안고 도착한 여행지가 실망을 안겨주는 것처럼, 타인의 마음으로 향하는 여정이 늘 긍정적인 결과를 주지 않는다는 것.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몇 번이고 타인에게 기꺼이 뛰어듭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예기치 못한 작은 순간이 우리를 전보다 충만한 사람이 되게끔 이끌어준다는 것을 믿으니까요. 여러분의 여행은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3주차 능소화 (1기)
여행 중 만나는 또 다른 여행
회색 벽돌 가득한 역, 푸른 들판, 윤슬이 반짝이는 호수. 터널을 지날 때마다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창밖은 내가 기차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 예측할 수 없는 전환은 재즈와 닮아 있다. 재즈는 정해진 악보에 얽매이지 않고 연주자의 감정과 호흡에 따라 매 순간 새롭게 해석된다. 그래서인지 기차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재즈를 찾게 된다. 생전 처음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도 그랬다. 그때 들었던 곡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 곡이 있다. 마치 기차 안의 조용한 객실처럼 고요한 울림을 남긴, Chet Baker의 Blue Room이다.
Blue Room은 1926년 뮤지컬 The Girl Friend를 위해 리처드 로저스가 작곡하고 로렌츠 하트가 작사한 곡이다. Chet Baker는 이를 특유의 나른한 보컬과 부드럽고 서정적인 트럼펫으로 풀어냈다. 혼인한 남자가 배우자에게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듯한 가사가 끝나고 이어지는 트럼펫과 피아노의 선율은 정적인 듯하지만 그 안에 다양한 감정들이 숨어 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창 밖 풍경처럼, 그의 연주의 순간마다 다른 감정이 흐른다.
기차가 선사하는 풍경이 매번 다르듯, Blue Room 역시 청자의 감정에 따라 다른 인상을 남긴다. 더블베이스, 피아노, 트럼펫이 각기 다른 색채로 공간을 채우고, 숨을 고르는 짧은 순간마저 음악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조용히 흐르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이 곡은, 여행 중 만나는 또 하나의 여행 같은 경험이다.
회색 벽돌 가득한 역, 푸른 들판, 윤슬이 반짝이는 호수. 터널을 지날 때마다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창밖은 내가 기차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 예측할 수 없는 전환은 재즈와 닮아 있다. 재즈는 정해진 악보에 얽매이지 않고 연주자의 감정과 호흡에 따라 매 순간 새롭게 해석된다. 그래서인지 기차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재즈를 찾게 된다. 생전 처음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도 그랬다. 그때 들었던 곡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 곡이 있다. 마치 기차 안의 조용한 객실처럼 고요한 울림을 남긴, Chet Baker의 Blue Room이다.
Blue Room은 1926년 뮤지컬 The Girl Friend를 위해 리처드 로저스가 작곡하고 로렌츠 하트가 작사한 곡이다. Chet Baker는 이를 특유의 나른한 보컬과 부드럽고 서정적인 트럼펫으로 풀어냈다. 혼인한 남자가 배우자에게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듯한 가사가 끝나고 이어지는 트럼펫과 피아노의 선율은 정적인 듯하지만 그 안에 다양한 감정들이 숨어 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창 밖 풍경처럼, 그의 연주의 순간마다 다른 감정이 흐른다.
기차가 선사하는 풍경이 매번 다르듯, Blue Room 역시 청자의 감정에 따라 다른 인상을 남긴다. 더블베이스, 피아노, 트럼펫이 각기 다른 색채로 공간을 채우고, 숨을 고르는 짧은 순간마저 음악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조용히 흐르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이 곡은, 여행 중 만나는 또 하나의 여행 같은 경험이다.


3주차 블루 (1기)
나에게만 집중하기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갔던 제주도가 떠올라요. 혼자 숙소는 잘 찾아갈까, 잠은 잘 수 있을까, 심심할까, 무슨 감정을 느낄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떠난 여행이었어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예쁜 카페에 가 있는 것도 좋았지만, 저에게 있는 책임감을 내려놓았던 여행이었어요. 내가 먹고 싶을 때 음식을 먹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누가 힘들진 않는지, 다른 사람은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아도 되었어요. 그동안 혼자서 괜히 느꼈던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과 있을 때 제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 보다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가는 편이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 익숙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를 가장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더라고요. 제 취향만을 반영하여! 독립 책방을 기준으로 코스를 짜고, 좋아하는 카페를 하루에 2개씩 가고, 갑자기 쉬고 싶어지면 숙소에 들어가서 누웠어요. 이야기를 나누는 것 대신 노래를 듣고, 새로운 풍경을 보고 혼잣말로 감탄하는 순간도 좋았어요. 나만 신경 쓰면 된다는 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해요. 우도에 가서 처음으로 전기자전거를 타봤는데 처음엔 휘청거리고,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무서웠어요. 손잡이를 꽉잡고, 중심을 지키니 얼마 안지나 적응하고 있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혼자서 잘 해결해 나가는 모습에 뿌듯했어요. 혼자 할 수 있다고 믿어보는 것도 필요한가 봅니다.
저 스스로를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을 잘 못 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숙소 사장님께 갈 곳을 추천해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같은 숙소를 쓰는 분들과 사소한 이야기도 나눴어요. 조금만 용기를 내면 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내가 나를 가로막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돌이켜보니 하나하나 스스로 해결해보면서 자신감이 마음에 생긴 것 같아요.
여행은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공간을 가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감정을 알려줍니다. 잘 보이고 싶어 나보다는 타인을 신경 쓰는 것에서 잠시 벗어나 나에게만 집중해보는 경험을 선사해줍니다.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갔던 제주도가 떠올라요. 혼자 숙소는 잘 찾아갈까, 잠은 잘 수 있을까, 심심할까, 무슨 감정을 느낄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떠난 여행이었어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예쁜 카페에 가 있는 것도 좋았지만, 저에게 있는 책임감을 내려놓았던 여행이었어요. 내가 먹고 싶을 때 음식을 먹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누가 힘들진 않는지, 다른 사람은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아도 되었어요. 그동안 혼자서 괜히 느꼈던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과 있을 때 제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 보다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가는 편이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 익숙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를 가장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더라고요. 제 취향만을 반영하여! 독립 책방을 기준으로 코스를 짜고, 좋아하는 카페를 하루에 2개씩 가고, 갑자기 쉬고 싶어지면 숙소에 들어가서 누웠어요. 이야기를 나누는 것 대신 노래를 듣고, 새로운 풍경을 보고 혼잣말로 감탄하는 순간도 좋았어요. 나만 신경 쓰면 된다는 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해요. 우도에 가서 처음으로 전기자전거를 타봤는데 처음엔 휘청거리고,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무서웠어요. 손잡이를 꽉잡고, 중심을 지키니 얼마 안지나 적응하고 있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혼자서 잘 해결해 나가는 모습에 뿌듯했어요. 혼자 할 수 있다고 믿어보는 것도 필요한가 봅니다.
저 스스로를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을 잘 못 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숙소 사장님께 갈 곳을 추천해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같은 숙소를 쓰는 분들과 사소한 이야기도 나눴어요. 조금만 용기를 내면 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내가 나를 가로막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돌이켜보니 하나하나 스스로 해결해보면서 자신감이 마음에 생긴 것 같아요.
여행은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공간을 가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감정을 알려줍니다. 잘 보이고 싶어 나보다는 타인을 신경 쓰는 것에서 잠시 벗어나 나에게만 집중해보는 경험을 선사해줍니다.
